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루시아 Jul 19. 2021

행복

나의 소소한 하루가 모여…


매월 15일은 아빠의 월급날이었고, 그날은 어김없이 아빠 손에 노란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빠와 함께 고소한 닭튀김 냄새가 솔솔 풍기는 그 가게 앞에 앉아 기다렸다가 따끈한 봉투를 안고 오기도 했다. 그 노란 봉투는 어린 우리 삼 남매의 즐거움이자 한 달에 몇 번 있는 맛있는 날을 의미했고, 가족 모두 함께 하는 시간 그것이 곧 행복이었다.





얼마 전, 박완서 선생님의 단편집 <자전거 도둑>을 읽고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였다. 수업 주제는 ‘행복은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아요.’였고, 함께 풀어 볼 문제는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였다. 행복? 아이들에게는 너무 추상적인 것 아닐까?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하나 모자란 것 없이 풍족하게 살고 있는 지금 이 아이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건강을 잃고 인생의 바닥을 본 나는, 그래도 가족 모두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이 행복. 그래야 나머지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5, 6학년 학생 대여섯이 앉아 각자 고민을 하며 내놓은 결과를 보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의논이나 한 것처럼 비슷한 답을 썼고, 그 답이 주제를 완전히 벗어나 아주 물질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공통 답안은 이랬다. ‘40평 이상의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요.’

아……. 내가 너무 이상을 좇으며 사는 사람이었나, 아니면 이 아이들이 속물인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것이 현실인가. 질문이 잘못되었을까? 내가 이 아이들과 나누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일까 마음이 복잡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어느 아파트 몇 평에 살고, 그 부모님이 어떤 차를 타는 지를 궁금해하는 세대라는 것은 너무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날 내가 아이들과 무슨 말을 나눴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너무 놀랐다는 기억뿐이다. 물론 수업 한 아이들 몇몇의 생각이 저 나이대의 아이들 모두의 의견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결과를 마주하고 집에 와서 한참을 곱씹어 보았다.

마스크를 끼고 뛰다니면서도 작은 풀꽃 하나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 것.


아이와 나란히 누워 물었다.  넌 언제 행복해? 지금처럼 엄마가 안아줄 때랑 친구들이랑 놀 때.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어려서 이런 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아이가 자랄 때 정말 소중한 감정은 넉넉히 느끼게 해 주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갑자기 행복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선뜻 답을 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누구든 행복한 어느 한순간의 기억을 떠올려 이야기해 주긴 하겠지. 매일이 행복할 수 없지만, 순간순간의 즐거운 기억이 모여 소소한 일상이 되고, 그렇게 그러모은 시간이 추억이고 행복이 되는 게 아닐까.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도, 행복의 기준도 다를 것이다. 조금 실망스럽긴 해도 내가 만난 아이들의 말처럼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행복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길에서 주운 꽃잎을 건넬 때에도, 맛있는 음료를 마실 때에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봐도.. 모든 순간이 행복을 여는 열쇠들이다.





식물에 물을 주듯 아이들에게도 말과 글로 혹은 행동으로 물을 준다. 아이들은 그것을 먹고 자랄 테지.

나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면 좋겠다. 눈에 보이는 커다란 것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그것을 얻지 못해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 무사히 학교를 마치고 가족들과 둘러앉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고 여기며 자랐으면 좋겠다.


아, 나는 오늘도 밥 짓는 냄새가 가득 한 집에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생각에 벌써 고맙고 행복한데.


사실, 우리 이렇게 나란히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도 행복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살아온 시간,살아내는 시간,살아가고 싶은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