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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Aug 11. 2022

반짝이는 만남

이슬아 작가와 만난 어느 행복한 날 이후에


아이는 벌써 한 달 전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급식왕 뮤지컬을 보러 간다고 들떴다. 너무 보고 싶어서 꿈까지 꿨다는 아이에게 생일 선물이라는 말로 포장해 티켓을 예매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게 뭐라고. 아니다, 그 나이에는 그것조차 신나는 일 테지. 한참 연예인에 빠져 팬클럽에 가입하고 공연을 보러 다니고, 그게 안 되면 TV 앞 붙박이가 되어 일어날 줄 몰랐던 시절의 나도 있었으니 아이에게 그건 그게 뭐라고 이상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속으로 콧방귀를 뀌던 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마음이 되었다.


내가 사는 지방에서 대규모 공연이나 강연을 보려면 대개 큰맘 먹고 인근의 대도시로 가야 한다. 그러니 지금 기억하는 그날은 이 소도시에서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던 셈이다. 이슬아 작가와의 북토크!

대학 시절에 좋아했던 작가들은 대개 소설가였다. 그때에 수필은 나도 쓸 수 있는 가벼운 글이라고 치부했고 특별히 좋아하는 글을 쓰는 작가도 없었다. 그러다 세월이 가고 나도 한 걸음 더 걸어보니 소설보다 수필에 마음이 더 쓰였다. 가공된 부분도 많겠지만 한 사람의 삶을 먹고 큰 글이라 종종 마음이 일렁였다. 어쩐지 나만 이렇게 초라한 것 같은 날, 가슴이 답답한 날에 글이 주는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슬아 작가를 좋아한다. 참으로 당찬, 글에도 그런 새롭고 당당한 힘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처음 이슬아 작가를 알게 된 건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라는 책을 읽으면서다. 어떻게 이렇게 솔직할 수 있지? 내 가족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게 할 수 있는 걸까? 요즘 세대는 이렇게 다른가 되짚으며 한참 멍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실 그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였다.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가려내며 솔직하지 못했던 나의 문제 말이다. 슬아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내가 못하는 걸 해내니 늘 더 대단해 보였고 그게 일종의 갈증 해소가 되어 시원했다. 그런데 뭐? 이슬아 작가가 이 작은 도시에 북토크를 하러 온다고? 좋았다. 마침 휴가 전 마지막 근무일이 강연일이라 마치 나에게 주는 방학 선물 같았다. 그렇게 일치감치 예약을 해 두고 그날만 기다렸다. 아이의 마음으로.


부랴부랴 퇴근을 하고 혹여 늦을까 자동차 가속 페달을 더 밟아가며 제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했다. 그곳에서 또 하나의 선물처럼 언젠가 이야기 한 오랜 친구를 만났다. 바빠서 약속도 제대로 잡지 못했는데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난 친구는 어쩜 그리 반가운지. 역시 관심사가 닮은 사람은 한 길에서 만나나 보다. 키가 작은 나는 앞자리의 방해를 덜 받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콩닥이는 마음을 부여잡고 기다렸다. 십여 분 후 강연 장소에 도착한 이슬아 작가는 편안한 차림이었지만 아우라가 엄청났다. 작은 몸에서 뿜어 나오는 굉장한 무언가는 올 초 줌 강연을 들었을 때와 또 달랐다.

‘어떻게 새로운 내가 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그간 써온 주제들의 변화를 이야기해주는데, 나는 아직 나와 그 언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글을 쓰고 있구나 자책하는 한편, 벌써 한 사이클을 돌아 다시 처음과 다른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작가의 글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참 부지런히도 살았구나. 이슬아 작가의 이름으로 낳은 많은 작품들이 부러웠다. 다작을 하면서 양과 질은 함께 늘어나는 것 같다는 이야길 해 주어서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의 글쓰기 시간이 더 고마워지기도 했다. 쓰는 사람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말할 때에는 역시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준다는 생각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슬아 작가가 알려 준 쓰는 사람이 잃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었다. 호기심, 용기, 사랑과 우정. 그중 용기가 거의 전부라는 말은 뭉클하기까지 했다. 무엇이든 일단 쓰기 시작하고, 활자로 꺼내 든 자체가 용기이며 그것이 곧 글쓰기의 전부라는 말일 테다. 처음 글쓰기 모임에 합류하여 글을 썼을 때 생각이 나서 괜히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이슬아 작가의 장래희망도 꽤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희망이든 계속해서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열의가 느껴졌다. 웃기고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쓴 부분에서는 나도 언젠가 우리가 썼던 글 속의 젊은 할머니 이전과 이후의 모습도 촘촘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이 작은 도시에 쓰고 싶은 사람도, 쓰는 사람도 그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놀라웠다. 나 역시 부지런히 쓰고 짓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미리 준비해 간 두 권의 책에 사인을 받고, 잠깐 대화를 나누는데 그 나긋하면서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또 한 번 반했다. 역시 아이나 어른이나 좋아하는 상대 앞에서는 깃털같이 가벼워지는구나.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도구다. 그 밤, 내 마음을 흔든 작가를 만난 기억은 앞으로 글을 읽거나 쓸 때 작지만 대단한 흔적이 될 것 같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 속에는 내 경험의 일부가 담겼을지라도 그 일부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물결 하나쯤은 그릴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면 좋겠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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