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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Sep 17. 2022

나의 무기력과 불안과
우울인 척하는 생활에 대하여

요즘의 나에게


밖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척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어김없이 고꾸라지는 너를 보며 가끔 젊은 날 너의 에너지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생각해. 시작을 두려워하는 나이라고 하기엔 너무 서러운, 그러나 시작도 끝도 쉽지 않은 서른여덟의 가을이 너에게로 와 말을 거는구나.

긴 우울의 터널을 지나 이제 생기 넘치게 살려고 애쓰는 네 등 뒤로 요즘 들어 가끔씩 울적함이 비치는 것 같아 지금 여기에서 몇 글자 보태보련다. 계절 탓을 하기에는 아직 가을이 깊지 않았으니 너의 문제가 더 큰 것이겠지. 소소한 일상에 감사를 가지고 살던 너의 모습은 없고,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요즘 네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그냥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 뭐야.


어제는 무기력한 너에게 활기를 주고 싶어 신청한 캘리그래피 수업의 첫날이었어. 생각보다 높은 연령의 어른들이 몇 섞여 있어서인지 넌 흠칫 놀라더구나. 그래도 흘낏 들리는 그분들의 목소리에는 에너지가 넘쳤지. 종이를 위에 두고 그대로 베껴 쓴 글씨에 감탄하고 선생님이 그려주시는 보라색 꽃 한 송이에도 기뻐하던 그분들을 보며 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평소와 같으면 그곳에서 얻는 활력이 아주 컸을 너인데 어찌 된 일인지 어제 너는 말없이 고요하더구나. 그래도 난 기억한단다. 네가 적은 캘리그래피의 문구를.

“내 삶이 나를 응원한다.”

넌 어떻게 사는 것이 너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구나. 조금 손해 봐도 좋으니 넌 그저 있는 그대로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면 좋겠어. 그러다 늘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안고 살지만, 그러고도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니겠니.


지금 디디고 선 자리의 처음을 기억하는지 모르겠구나. 네게 처음 배운 아이들 중 몇몇은 어느새 군 복무를 마치고 어엿한 성인이 되었는데 그동안 넌 어떠했는지 돌아본 적 있니? 네가 치열하게 살았던 2008년의 가을을 나는 기억한단다. 그때에도 어김없이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던 너였는데 그때에 나는 느닷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온 너의 선택을 아주 뜻밖이라 여겼었지. 그때 네가 말했지. 내가 만나는 이 아이들은 자라는데, 나는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고. 그러고 난 후 네가 선택한 길은 네 스스로 다시 배우는 자리로 돌아가는 거였지.

지금도 다시 그런 자리가 필요한 걸까? 무엇에 목말라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너는 불안하고 또 불안해 보인단다. 불안과 무기력의 사이에서 네가 하는 우울 테스트도 가만 지켜보았지. 그저 보통 사람들과 같다고 한 결과를 보고 안도했지만, 그러면 또 너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더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 요즘 네가 읽은 책의 한 구절을 기억하는지 모르겠구나. ‘너는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될 수 없다.’는 말을 말이다. 그래, 그저 너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너는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네가 정말로 행복을 느끼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은 있니? 누군가와 나눈 대화에서 너는 말했지.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누군가 가르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그게 글쓰기가 아니라면 말이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의 네 모습에 실망한 결과인 걸까.

명확히 하나의 답을 내릴 수 없지만 어렸던 네가 자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지금 내 자리는 위태롭지만, 스스로 내 자리의 희미한 존재를 알고 컸지만, 여전히 불편한 너의 선 자리를 오래도록 잊지 말기를 바란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큰길 너머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을 생각해본다. 네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 너의 앞에 펼쳐질 내일이다.

진아야, 나는 네 과거의 아린 맛은 잊고 너의 새파랗게 젊은 날을 즐길 줄 아는 네가 되기를 바란단다. 마음으로 맺는 응어리도 어느 하루쯤은 시원하게 웃어넘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진 네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너의 투명한 마음이 빨갛게 타올라 다시 네 마음에 무언가 하고자 하는 열의가 되길 간절히 바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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