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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Dec 01. 2022

안경의 무게

짧고 작은 불편의 순간


거추장스러운 게 싫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착용하는 액세서리-그만큼 내게는 모양도 크기도 착용감도, 아무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건이란 말이다-는 안경이다. 그래서 값이 나가더라도 고를 때부터 꽤 깐깐하게, 유일한 사치라 생각하고 즐기며 고른다. 그런데 그렇게 골랐던 안경에 문제가 생겼다.


어제 오후부터 제법 긴 시간 두통에 시달렸다. 두통이라고 하지만 사실 내 안경 코받침에서 시작된 통증이었다. 작은 점의 무게가 누르는 고통이 무엇에 비겨도 지지 않을 만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는 내 눈에 눈물을 글썽이게 했다. 얄궂은 일이다.

퇴근하자마자 안경점을 찾았다. 남편이 미리 전화를 해 둔 덕분에 이내 다른 코받침으로 갈아 끼우곤 착용감도 괜찮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두통과 짓눌린 자국의 아픔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안경을 벗어던져놓고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두통약을 집어삼키고 얼른 잠을 청했다.

다시 오늘 아침. 일어나 한참을 머뭇거리다 안경을 끼는데 똑같다. 짜증도 나고 아프기도 해서 자꾸 눈물이 났다. 보이는 게 없어 꾸역꾸역 일회용 렌즈를 끼고 앉은 나를 데리고 남편은 다시 안경점으로 갔다.

다시 어제와 또 다른 재질의 코받침으로 갈아 끼우고도 안 되겠던지, 남편은 다른 안경을 고르라고 한다. 안경테 고르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여유도 없이 무조건 코받침이 없는 안경부터 보여 달라고 말했다. 선택지는 넷. 아무 관심 없는 이가 보면 똑같은 안경이겠다 싶은 늘 비슷한 스타일의 안경을 골랐다. 그래도 꼭 같지 않다. 코 옆에 눌리던 코받침 자리 하나 없을 뿐인데 지끈거리던 머리가 곧 나을 것 같다. 혹시나 렌즈가 무거우면 새로 고른 안경도 소용이 없을까 봐 얇고 가벼운 렌즈를 주문해 놓고 오는 길이다. 별수 없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때에는 코받침만 새로 바꿔 낀 내 안경을 끼고 있는데 심적인 동요가 더 큰 건지 통증이 여전하다.


희뿌옇게 보는 세상은 내게 온전한 세상이 아니다. 나는 안경 없이는 한 치 앞을 못 보는 장님이다. 하다못해 거울 속의 내 모습도 살구빛은 얼굴이며, 검은 것은 눈썹 정도인 줄만 아니까 말이다. 예전에도 안경을 쓰면서 불편했던 적은 있었다. 비 오는 날이나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김서림이 특히 그랬다.

내가 처음 안경을 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그때엔 왜 그렇게 안경 쓴 사람이 부러웠는지, 나도 처음 안경을 끼고는 대단한 무어라도 된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잘 지켜야 했던 눈인데 이제와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꽤 오랫동안 렌즈를 꼈고 아프고 나서는 안구건조가 심해져서 다시 안경과 한 몸이 되었다. 우리 제법 친해진 줄 알았는데. 작은 아픔, 작은 불편이 주는 고통이 꽤 크다. 평소에는 고마움도 몰랐던 이 작은 물건이 이틀 새 나한테 아주 큰 영향을 주었던 녀석이었음을 안다.


지금 이 작은 물건이 내 콧등을 짓누르는 무게가 꼭 내 잘못의 무게같이 느껴진다. 안경 하나 끼고 바라보는 세상일 뿐인데 가끔 내 마음과 다른 것에 쉽게 상처 주고, 삐딱하게 바라보며 지낸 것은 아닐까 하고. 오늘 저녁 가벼운 마음으로 코받침 무게만큼을 던 안경을 받으면 좀 더 웃으면서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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