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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Nov 24. 2022

잔소리는 힘이 있을까

내가 내는 소리는..



자유분방하게 자랐다, 내 뜻대로. 그래도 나만의 기준이 있었고 줄곧 그 선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잔소리가 심한 부모님 밑에 자란 것은 아니었기에 집에서도 듣지 않는 싫은 소리를 밖에서 듣기는 더 싫었다. 그래서 눈치껏 싫은 소리만은 듣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 노력이 무색한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아니 아직은 어느 정도 먹히고 있다. 어디서든 크게 튀고 싶지 않은 나의 성격 탓에 내게 저 잔소리만은 피해 가길 늘 바라며 살았으니까.


최근에는 언성 높이는 일이 잦았다. 내 아이에게도 그렇고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최초의 원인은 상대에게 있었지만 어깨가 축 처진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소리쳤나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 왔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내 말을 먹고 자라는 다른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목소리의 역할을 날마다 새롭게 깨치는 중이다.


작고 예쁜 여자 아이 하나가 있다. 딸아이와 나이도 같고 성격도 비슷해서 혼자 있을 땐 한번 더 껴안아 주고 싶게 귀염성도 있는 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교실에만 들여다 놓으면 아이도 나도 돌변하고 만다. 아이는 내 말끝마다 딴지를 걸고, 다른 친구들에게는 내가 안 하면 너희도 못한다는 훼방꾼의 심보가 된다. 학년 수준에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생각과 말이라면 더 뛰어난 아이는 늘 중심에 서고 싶어 한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도 수업의 온기를 제 말에 주목시키는 쪽으로 슬쩍 바꾸려 한다. 친구들의 의견에 토를 달고, 내 말에 왜를 덧붙여 가며. 가만 보면 오히려 더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 자체로 반짝반짝한 아이인데 혼자만 모르는 것은 아닐지. 사실 모든 수업 중 말을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시간이 내 시간이기도 해서 많은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고, 나 역시 선생님의 입장보다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를 바라보게 될 때가 많으니 문제가 더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밤 이런 문제로 엄마에게 혼이 났다던 어제도, 수업 시작과 동시에 나와는 앙숙이 되었다. 순식간에 변하는 것이 아이의 마음이었을까 내 마음이었을까. 한 마디도 지지 않고 꼿꼿한 아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누구를 생각했던 것일까. 조금 유연해졌으면 했다. 여럿이 있을 때에는 상대의 말도 들어주고, 나와 다르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시간도 충분했으면 했다. 모두가 나만의 바람이었을까. 수업을 마치고 오늘은 괜찮았냐는 엄마의 연락이 왔다.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고, 그 후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도 마음이 몹시 불편했던 나는, 오늘의 나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나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 그게 최선이었을까.


말에 힘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오히려 그 말에 의지해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는지. 나는 좋은 소리를 듣기 원하면서 싫은 소리를 더 많이 하고 살았던 게 아닐지 오래 생각했다. 내 말 끝에 누군가의 숨이, 자존감이 걸렸다면 나는 어떤 소리를 내줘야만 하는 걸까. 물론 때에 맞는 적절한 충고는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테지만.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인지. 내가 하는 것은 잔소리인가 충고인가를.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감정에 휘둘릴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소리가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비틀거리며 갈 때도 많다.


잔소리는 힘이 있을까. 있겠지? 이 순간을 이겨낼 소리는 어떤 기운을 가진 걸까. 잠깐의 반성으로 빚어보내는 내 잔소리가 네 마음에 닿을 때쯤엔 미미하게나마 네가 잘 되길 바라는 사랑의 이름으로 닿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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