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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Mar 07. 2023

빛나는 너의 하루를 응원해

진정 즐길 줄 아는 나의 딸, 나린에게




지난 토요일에는 네가 두 달가량 준비한 피아노 콩쿠르가 있었지. 전날 저녁 엄마가 보았을 때, 네 출전곡은 연습하지 않고 친구 곡을 연습하고 있길래 핀잔을 줬는데 결과 앞에서는 엄마의 그 말이 부끄러워지네. 토요일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손을 풀어야 한다면서 뚱땅거리며 피아노 연습을 했던 너. 피아노가 좋은 건지 콩쿠르 때마다 새로 사는 원피스가 좋은 건지 아직 아리송하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한 너의 과정을 우선, 그렇게 얻은 결과를 그다음으로 칭찬해. 


반짝이는 분홍빛 트위드 원피스를 입고 한껏 끌어올려 묶은 포니테일의 웨이브를 확인하며 종종거리는 너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 마지막 연습 때 너무 긴장해서 페달 밟는 걸 잊었다며 웃는 너에게, 전날 밤 꿈도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는 걸 꾸었다는 너에게 “실수해도 괜찮다. 네가 그동안 연습한 게 장하다. 끝까지 잘 쳐라.” 했지만 사실 더 떨리는 건 엄마였다는 걸 너는 알까?

첫 번째 콩쿠르 때에는 다른 부모님들이 손에 쥔 꽃송이를 바라보며 빈손인 엄마가 너무 부끄러웠는데... 엄마도 처음이라. 이번에는 특별히 네가 원하던 킨더조이 꽃다발을 미리 주문하고 언제나 감사한 선생님께 드릴 꽃다발도 함께 준비해서 너보다 훨씬 먼저 경연장에 가 있었지. 네 번호를 미처 물어보지 못해 2학년 차례가 끝나가도록 아직 무대 위에 보이지 않는 너를 찾으며,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엄마 아빠 둘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다행히 네가 무대 위에 올라 연습 때 보다 더 열심히 연주하고, 네 피아노소리에 맞춰 심사위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서 속으로 ‘아, 실수 없이 잘했구나!’ 생각했어. 더없이 상기된 선생님 목소리에 다행이다, 장하다,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는데... 1등 상! 그것도 준대상과 대상을 다시 가릴 후보라니. 집으로 향하려던 우리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하염없이 또 모든 학년의 경연을 마칠 때까지 기다릴 때 그 두근거림이란...

한 번 더 같은 곡을 연주하고 점수를 매기는 동안, 긴장한 탓인지 전보다 부족한 느낌에 이것만 해도 잘했다, 이제 집에 가자며 손을 잡고 주차 정산까지 하고 나오는 길. 급하게 걸려온 선생님 전화에 다시 달려가니 세상에! 엄마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아니 받을 수 없는 상을 네가 받는다지 뭐야? 2학년 지정곡 대상, 거기다 저학년부 지정곡 전체대상이라니! 세상에! 친구 곡이 더 멋진 것 같다며 연습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건 네가 네 몫을 충분히 연습하고 쉬는 중이었다는 것을 엄마는 몰랐지. 대단해, 장하다 우리 딸! 아니, 상이 아니라 선뜻 콩쿠르에 나가겠다고 결심한 그것부터가 대단한 용기였던 걸 칭찬해.


사실 엄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수 없이 피아노를 연주할 아니, 그 앞에 설 용기가 손톱만큼도 없는 콩알심장을 가진 사람이야. 그런데 너는 너무도 당당하고 의젓하게 그 자리에 올라 네 몫을 다했잖니?  그걸 보며 자랑 같지만 잘 키웠다, 내 딸이지만 잘 컸다 혼자 흐뭇해했는데 상까지 받을 줄이야. 네가 노력한 결과를 보상받는 것 같아서 너무 대견했고, 사실 상을 받지 못했어도 무대에 서 본 것만으로도 굉장히 멋진 경험이었어. 그렇지?


공부는 한참 잔소리를 해야 겨우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는 건 언제나 즐거운 너. 네가 즐길 수 있는 무언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얻은 결과라는 점이 가장 칭찬받을 일이라는 거, 너도 알지?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 아니 하고 싶은 게 있단 것만으로도 행복한, 진정 즐길 줄 아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라. 한 번의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늘 꿋꿋이 네 자리를 지키며 늘 노력하고 연습하는 사람이 되길 바랄게. 그게 무엇이든.

엄마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짜릿한 기쁨을 맛보게 해 주어서, 네가 한 일에 오히려 엄마가 칭찬받게 해 주어서 부끄럽지만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 언제나 멋진 연주를 들려주어서 고맙고, 이제 네 피아노 연주를 꼭 붙어서 들어달라는 목소리도 거절하지 않을게. 언제나 좋아하는 일로 많이 웃고, 네가 늘 행복하길 바란단다.



                                                                                                           2023년 3월에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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