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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Apr 06. 2023

밥상머리 사랑

아직 받는데 더 익숙하지만...



오랜만에 친정에 갔다. 늘 딸아이를 보러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는데 아이가 3학년이 되고 나선 그마저도 바쁜 스케줄 탓에 힘들었다. 미리 약속을 해 둔 덕분인지 현관문을 열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물, 잡채, 수육, 생선구이... 생일 밥상 같다. 아니다, 생일엔 으레 외식을 하곤 했으니 그저 우리 집에선 만날 수 없는 푸짐한 밥상인 거다. 귀찮아서 혹은 집안에 냄새 배는 게 싫어서 내가 잘 해 먹지 않는 음식으로만 상을 차려놓으셨다. 육식파인 우리 가족은 고기를 먹겠다고 외식하는 일은 잦지만, 생선을 먹겠다고 외식을 하진 않는데 그래도 가끔 노릇하게 잘 익은 뾰족 조기 한 마리와 고등어구이가 그리울 때가 있다. 엄마는 그걸 잘 기억해 놓으셨다가 우리가 친정에 들를 때 종종 그걸 내어주셨다.


오늘도 본인은 함께 드시길 멈추고 아이 옆에 앉아 먹기 좋게 고기를 떼어주시고, 우리가 먹기 좋게 손수 생선살을 발라주신다. 마침 주말에 타 지역에 사는 남동생이 다녀갔다기에 “재언인 와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갔나?” 여쭸더니 “아들은 엄마 고생한다고 집에서 밥 차리지 말라한다. 맛있는 거 사주고 가지.” 하셨다. 아차 싶어 뒷머리가 서늘했지만 곧 이어지는 엄마의 말씀이 내내 기억에 남아 지금 이 글도 쓰고 있다. 함께 간 남편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들은 그런데, 딸들이 오면 다르다고. 뭐 하나라도 더 내 손으로 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나중에 나린이가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면 무슨 마음인지 알 거라며 다시, 바스러지는 생선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뚝뚝 떼어먹기 좋게 놓아주셨다. 그것도 모자라 집에 가서 먹으라며 바리바리 챙겨놓은 것들... 받기만 하는 나는 자꾸만 작아진다.


엄마의 마음인 걸, 아빠의 마음인 걸 잘 안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받는 데만 익숙해 고맙다는 말은 쏙 빼고 야금야금 받아먹기만 하는 게 가끔 내가 얄미워하는 딸아이의 모습과 닮았다.

사실 이날도 지난주에 엄마가 부탁한 주방 시트지 작업을 하기 전에 치수를 재러 간 길이었다. 아주 한참만의 친정 방문이기도 했다. 다시 작업을 하러 가려면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참 다르다. 엄마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늘 기다려주기만 한다. 엄마는 본인 아프신 걸 생각지도 않고 그저 더 못 주는 것이 안타깝다. 몇 가지 반찬으로 상을 차리고, 깨작대는 아이를 보면 다 큰 게 무슨 반찬투정이냐며 다그치는 나와는 다르다. 생각해 본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고.

한 끼 밥상 위에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없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 관심에 대한 보답은 늘 투정이었다. 이것마저도 마흔이 다 되어서야 느끼는 마음이다. 때때로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이 너무 많다. 자라면서 엄마 아빠는 “사랑해”라는 말에 인색하셨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긴 했지만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해서 부모님이 나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꾹꾹 눌러 담은 밥공기에, 밥상머리에서 바삐 움직이는 엄마의 손과 아빠의 젓가락 행보에 그 말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친정에서 밥을 먹고 온 다음날부터 겨우 2-3일이 지났다. 그 며칠간 말없이 딸아이가 먹고 싶다는 반찬을 내어주고 화도 조금 참아보았다. 엄마만큼은 못 되어도 가만히 마주 앉은 아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웃어주고 들어주며. “오늘 밥 참 맛있었다!”하고 웃는 아이를 보며 내가 줄 수 있는 사랑도 아직은 겨우 이것만큼이 아닐까 생각했다. 쌀알만 한 나의 마음이 콩알만큼이라도 커져서 언젠가는 내가 엄마 아빠의 밥상에 사랑을 담뿍 담을만한 기적이 있으면 좋겠다. 아직, 아직은 마음이 간질간질해서 어려운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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