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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Apr 20. 2023

질투의 화신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니~ 내가 지금 여기 눈앞에 서있는데’ 질투하면 단번에 내 귓가에 맴도는 노래. 딱 이런 순간이 왔다. 나는 삼 남매 중 맏이다. 나 역시 양가의 관심을 가득 받고 자랐던지라 내 앞에 있는 이의 눈길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 있을 때 잘 참지 못하는 편이다. 내 것을 지독히도 아끼지만 좋아하는 이 앞에서는 한없이 내어주려 하는 것도 사실 나다. 당연히 남편과 나를 닮았겠지만 이글이글 타오르던 아이의 눈빛을 잊을 수 없는 지난 주말의 이야기다.


오랜만에 돌잔치에 참석했다. 시고모님 댁 아가씨가 10여 년 만에 둘째를 낳아 축하해 주러 가는 날이었다. 그러니 모두 하하 호호 웃기만도 부족하고 바쁜 날이었다. 시작은 늘 비슷하다. 누구의 생일파티냐, 그럼 아기가 몇 살인거지? 이름은 뭐야? 들뜬 마음과 여러 질문으로 시간을 보내긴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로비에서 만난 다른 분들께 인사를 잘하고, 웃으며 식장으로 들어섰다. 가까이 한복을 입은 주인공 가족이 보여 인사를 하려고 다가가며 쭈뼛쭈뼛하기 시작하는 딸아이와 그 사이에서 눈치게임이 시작 됐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가씨와 축하 인사도 나누고, 이제 돌인데 뛰어다니는 주인공과 눈을 맞추려는 찰나 뜨끈한 눈길이 느껴진다. 흰자위를 가득 드러내고 입을 앙 다문 아이. 아가씨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 귓속말로 ‘질투하는 중이라’ 내뱉고 나니 상황이 더욱 우스워졌다. 축하 자리에서 질투라니. 어떻게 자리배치도 꼭 그랬는지 내 오른쪽에 앉은 아이는 성장 동영상을 볼 때도 뛰어다니는 꼬맹이를 쫓아 눈길을 주려할 때도 눈총을 준다. 자기를 좋아하는 할아버지 앞에서도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거나 찌릿한 눈길을 내뱉으니 내 눈 둘 곳이 없었다. 결국 돌잔치 주인공을 안아주기는커녕, 가까이에서 눈 한번 마주치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른 가정들과 달리 나와 남편 친구들은 가족모임을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아이가 유독 아이들이 많이 모이고 웅성웅성한 분위기를 즐기지 못하는 걸까? 내가 친구들 사이에서 좀 이른 결혼을 하기도 했고, 그렇게 만날 때면 화제의 중심이 곧 아이가 되곤 해서 자기가 주인공 같았던 시기가 길었다. 양가에 어린이도 딸아이 하나라 모든 관심이 아이에게 쏟아지긴 했다. 그래도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지금까지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니니 다행인 걸까? 아이에게 주는 우리 사랑에 부족함이 있었을까?


누구의 잘못인가? 아니 아이의 성향이겠지. 자라면서 겪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관심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성인인 나도 잊히는 것, 소외되는 것이 싫은 데 아이라고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대로 둘 수는 없는데, 질투를 다스리는 방법이란 게 있을까? 둘째 계획이 없는 우리 집에서 아이 하나만 보고 있을 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예상치 못한 집 밖의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말로 상황을 이해시켜야 할지 모르겠으니 나도 아직은 덜 여문 건가 보다. 자라면 좀 나아질까 생각도 했지만 지난 시간을 더듬어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더 많이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어떻게 줄이겠는가. 이렇게 쓰고 있으면서도 알맞은 답을 찾지 못하겠다. 질투의 화신이라 쓰고 보니, 우리가 아이를 그렇게 키운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서 뜨끔하기도, 따끔하기도 하다. 수없이 쪼개지고 만나는 인간관계 속에서 아이가 맺는 관계가 좀 더 수월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겠지. 답도 없는 상황을 던져두고 이야기를 하려니 더 답답하지만 아이와 이야기하고, 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는 수고를 더해야겠다. 우리가 같이 여물 날을 기다리며, 그땐 질투가 아닌 사랑이 되도록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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