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루시아 Oct 07. 2021

의자 그게 뭐라고

나의 자리는 어디



나 의자 좀 쓸게~

오늘도 남편의 방에서 거실까지 의자를 끌고 나와 앉았다. 세 식구가 사는 집에 그래도 적지 않은 의자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쓸 의자는 없었다.


내가 앉는 자리가 다 나의 온기가 닿는 곳이고 내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래 봤자 이제까지 내 자리는 식탁, 공부상, 간이 테이블………. 그렇다. 사실 나를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자리를 마련한 적은 없었다. 한창 공부할 때야 내 의자도, 책상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그걸 요구할 나는 못 되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의 책장, 책상, 의자를 늘리면서 자연스레 내 책은 책장 뒤쪽 혹은 전자레인지 장에까지 침입했다. 집에서 나의 자리도, 나의 책도 지분을 잃어가고 있었다.


올해 초 이사를 오면서 남편은 입버릇처럼 노래하던 자기 책상을 둘 온전한 자리를 찾았다. 이전 집에서 쓰다가 해체해 둔 책상을 다시 펴고, 본인의 의자에 앉아 이것저것 시간을 보낸다. 아이는 해가 잘 드는 창가 자리에 하얀 책상과 좋아하는 민트색 의자를 가졌다. 책상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여기저기 옮겨 가며 앉는 곳 모두 저의 자리다. 그럼 난?

계절이 피고 지는 창가 자리를 놓칠 수 없던 남편이 높고 긴 테이블을 들였다. 나의 바람이기도 했다. 테이블 위로 수북이 쌓이는 남편 짐을 본인의 책상으로 쫓아 보내고 마침내 긴 테이블은 나의 차지가 되었다. 마땅한 의자는 없어서 남편의 의자나 아이의 의자, 식탁 의자도 그 짝이 되었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잠시 내가 생각할 여유를 주는 자리는 그것으로 족하다 여겼으니까.



한때 의자 하나를 사는데 공을 들이는 사람들을 보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나 보니 그런 고민은 정말로 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목요일의 글쓰기를 하면서 의자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아니 의자라곤 하지만 실제 나의 자리가 어딘가 돌아보게 되었다. 참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동안 꿈만 꾸었던 일을 조금 더 크게 꾸어보기도 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하면서 나의 자리를 한 번 더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나에게 꼭 맞는 의자 하나쯤은 들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소파 팔걸이에 대고, 식탁에 앉아 옅게 피어오르는 반찬 냄새를 맡으며 끄적이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온전히 선물할 편안한 시간을.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련다. 남편이 책상을 가지고 싶다고 했던 마음이.



의자는 누군가의 고민과 피로와 꿈을 먹고 닳아가는 곳이다. 어린 시절 내가 가졌던 빨간 회전의자나, 딱딱한 강의실 의자, 폭신한 등받이 의자 모두 그랬다. 의자를 부비고 앉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민과 꿈의 깊이도 달라졌다. 열심히 내가 앉을, 내 마음에 꼭 드는 의자를 검색하면서 드는 생각은 나도 꿈꾸어야지!


사실 의자가 있고 없고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내어 줄 온전한 내 자리는 침체된 나의 기운을 끌어올려줄 것이고, 나를 위해 책 한 줄이라도 더 읽을 시간을 줄 것이며,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는 위안과 감사를 줄 것이다. 그러니 꼭 내 맘에 쏙 드는 자리 하나 얼른 마련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쉼이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