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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Oct 14. 2021

1층 집 창가에서

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곳




커튼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먼저 아침을 알리면 그렇게 창문을 열면서 계절을 느낀다. 아! 가을바람이다.



내내 10층 이상의 집에서만 살다가 1층으로 온 지 벌써 8개월째다. 늘 나를 향하는 소리가 더 커서 가족과 함께이거나 아니면 거의 집순이 생활을 지향하는 찰나 코로나가 찾아왔다. 그 이후로 더욱 큰 목소리로 집 밖은 위험해를 외쳤던 내가 유일하게 누리는 호사는 창밖 탐색이었다. 창을 통해 보는 남강의 윤슬도 멋졌고, 밤이면 우리 집보다 더 높은 맞은편 아파트의 불빛도, 나무 꼭대기의 초록도 그런대로 즐거움인 줄 알았다.


그러다 갑자기 상반기 계획에 없던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 집 창밖 지분의 반을 차지하는, 그러나 잎을 채 떨구지 못하고 선 큰 나무가 너무 흉물스러워 보였지만, 아이가 마음껏 뛸 수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1층 집의 매력이라 생각하며 이사를 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집에서 봄, 여름을 보내며 그 나무의 초록이 주는 모든 기쁨을 한 몸에 받았다. 비 오는 날은 그것대로, 창가에 맺힌 빗방울이 소란스럽게 예뻤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어느 하나 놓칠 것이 없었다. 오늘같이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엔 그림자 속에서 나뭇잎이 춤을 추는데 가만 보고 있는 그 시간이 바로 즐거움이다. 어느 때보다 높푸른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늘도 앉은자리에서 가을을 느끼는 중이다.





우리 집에서도 창은 공기나 햇빛을 받을 수 있고,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낸 문이라는 사전의 의미 그대로의 존재다. 하지만 네모반듯한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가지각색이었다.


아침이면 어린이집 등원 차에 오르는 꼬마의 정겨운 노랫소리가 들리고, 누군가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도, 친구를 부르는 외침도 창을 통해 집 안으로 스민다. 어느 날엔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한 누군가의 통곡 소리도 마주했다. 창 너머로 계절마다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도 느낀다. 햇볕에 녹아가듯 느릿한 걸음으로 걷던 사람들이, 옷깃을 여기며 종종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가만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요즘의 하루는 나만 들여다보고 사는 내게, 누군가가 준 선물 같다. 이렇게 창을 통해 오는 그 생기가 집을 더 사람 사는 집답게 만들고 있다. 어쩌면 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아니 그 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속을 알 수 없는 나에게 창은, 어쩌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게 해 주는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는 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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