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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Nov 25. 2021

요즘의 나는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오늘 아침에도 나를 깨우는 건 아이 방 너머 보이는 거실 끝자락의 저 햇살이다. 커튼 한 장을 거쳐 거실로 들어온 빛과 온기가 제법 따숩다. 오늘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글의 주제를 받아 들곤 ‘가장’이라는 말이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다. 내 일상과 주변은 굵직한 사건들 없이 그저 흘러가는 것들인데 그 가운데서 하나를 꼽으라니. 한참을 고민하다 나는 나를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을 떠올렸다.


겨울 초입의 아침은 한여름의 그것보다 늦게 시작된다. 그래서 아침잠이 많은 나도 그 품에 와락 안길 수 있다. 아침의 컨디션은 전날까지 평온했던 내 일상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내게 민감한 것인데 매일 아침 만나는 가득한 햇살이 그런 민감함을 다소 녹여준다. 남편은 이미 출근하고 없지만, 햇살의 움직임에 맞추어 아이를 깨우고 나는 그 달콤한 햇살에 취하는 아침이다. 창밖으로 누군가 웅성거리는 소리도 달그락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어느 때부턴가 나는 강렬한 햇볕은 피하고, 해가 있어도 추운 공기가 나의 몸을 비집고 드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이맘때면 나는 어디서 손을 꺼내놓는 게 무섭다. 루푸스보다 먼저 찾아온 레이노 때문에 기온에 상관없이 주변의 온도와 내 손의 온도 차가 느껴질 때 찌릿하게 때론 손의 감각이 무뎌지며 휘황찬란한 빛의 손이 된다. 누군가는 손이 왜 그래요 묻기도 하고 내가 먼저 발견하곤 주머니에 얼른 손을 찔러 넣기도 한다. 늘 손을 꺼내놓고 펜을 쥐고 있는 내 손을 누군가 바라보는 일을 하는데 하얗게 변하거나, 파랗게 질린 손은 상대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데 한몫 거든다. 이 사람 건강염려증 아닌가 할 정도로 극도로 예민한 나는 해가 한창 좋은 낮에도 햇볕을 즐기기보다 피하기 바쁘다. 괜히 햇볕에 취해 있다가 잘못하면  당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을 껴안아야 하니, 온전히 아 좋다!라고 생각할 시간이 적다.


그러고 보니 내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의 시작은 아침이 될 수밖에 없다. 괜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평화롭고 기운 넘치는 시작이니까. 언젠가 1층 집에 살면서 누리는 것들 중 하나가 창으로 스며든 해를 바로 만나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강렬하진 않지만 그 은은한 햇살의 변화가 나는 그래서 좋았나 보다. 적당히 달큰하고 나른한 아침의 기운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눈이 부시게는 아니지만 커튼 끝에 달린 햇살 한 자락에 무언의 안도감이, 그리고 오늘도 잘 살아야지 하는 다짐이 실린다. 요즘 나는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에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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