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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an 20. 2022

겨울잠

답답한 일상에 대한 푸념



퇴근길이었다. 작년에 태어나 솜털 보송하니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들을 본 게 언제였지? 오랜만에 그 녀석들을 만났다. 훌쩍 자라 그중 하나는 다른 고양이들의 우두머리가 된 모양이다. 보도블록 뒤편 화단에서 몸을 잔뜩 움츠렸다가 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린 듯, 재빠르게 다른 두 마리를 불러와 인도를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요즘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라는 말로 모든 상황을 이야기한다. 따지고 보면 아침나절이나 밤늦은 시각에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긴 하지만, 많은 것이 내가 아닌 주변 것들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일을 하며,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생각의 한계에 직면한 요즘. 고민이 많다.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요즘에는 모든 것이 힘에 부친다는 생각뿐이다. 조금 나아졌다 싶으면 또 한 번 고비가 오고, 시쳇말로 멘탈이 털리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요즘 나를 들여다보면 ‘대충’ 산다라는 말에 딱 들어맞다. 목글모는 그런 일상의 돌파구 이상이지만, 요즘에는 글조차 손에 잡히지 않고, 힘 쏟아야 되는 것에 대충대충. 이 시기의 극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문득 나의 꿈은 무엇이었던가 생각해본다. 원하는 것이 비교적 분명하고 뚜렷이 목표를 향해 나아갔던 나는 요즘 왜 더 많이 빈둥거리고 있으며, 왜 빈둥거리고 싶은 건지 들여다본다. 그래, 핑계 같지만 요즘엔 목표나 구체적인 하루 계획, 반성이 없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되는 대로 대충 산다.

십 년도 더 전에 지금 같은 답답함을 경험했었다. 그때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을 때였는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실력이 느는데 왜 나는 무언가 해소가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계속 발목을 잡았었다. 결국 하던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으로 뛰어들어갔었지.


나를 자라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무엇일까.

어젯밤에 만난  길고양이들은 관심을 주는 누군가의 먹이와 따뜻한 담요 덕분에 스스로 뛰어나갈 힘을 얻고 자기 길을 간다. 나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요즘엔 도통 자극이라고 할만한  없이 그저 바쁘기만 하다. 가볍게 시작한 일이 나의 하루를 옥죄어 무미건조하다고 하기엔 너무 바쁜 하루고, 무얼 했냐 묻는다면 딱히. 일했지 , 밖에  말이 없다. 답답한 하루의 연속이다. 돌아보니  정신처럼 아무것도 제자리에 있는 것이 없다.



나도 어제 만난 아기 고양이들처럼 웅크리고 때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맞은편 자리의 저 새파란 이파리들처럼 겨울철에만 더디 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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