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설해
卄年不到香雪海 梅花憶我我憶梅 何時買舟冒雪去 便向花前傾一杯
입년부도향설해 매화억아아억매 하시매주모설거 변향화전경일배
이십 년 간 향설해 가보지 못했는데 매화 나를 기억하고, 나 또한 매화 잊지 않았네. 언제쯤 배를 사 향설해 보러 가려나 꽃 앞에 두고 한 잔 술 기울이네.
오창석(吳昌碩), <향설해香雪海>
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자 동양화에선 군자의 절개를 나타낸다.
눈보라 속에서도 고고하게 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매화를 즐겨 그렸다.
향설해는 매화가 만발하면 하얀 꽃의 향이 가득해 향기로운 눈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전기 님의 <매화 초옥도>를 본 적이 있다. 마치 눈송이 같이 하야디 하얀 매화나무가 사방에 가득하여 바다와 같이 일렁이는 그림이었다. 어찌하여 매화를 향설해라 불렀는지 이해가 되었다. 전기는 조선시대 말기 남종 문인 화가로 불과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그는 비록 신분은 높지 않았으나 시와 그림에 무척 뛰어났다. 눈 쌓인 산야에 무수한 매화나무와 하얀 매화꽃의 풍경,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친구를 향해 가는 자신을 그린 매화 초옥도. 매화를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그려서 인지 그의 그림은 먹빛 가득한 무채색이지만
무척이나 따뜻하다.
그림 속에서 제주의 풍경이 떠올랐다. 한라산 앞으로 고고하게 뻗어 난 매화나무들. 길고 긴 겨울의 끝을 알리는 매화는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다. 매화 눈송이의 향으로 사방이 가득 찼다. 매화가 어찌나 하얀지 다른 것들은 수묵화의 먹빛처럼 까맣게 느껴진다. 매화의 바다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말 부부. 그리고 자그마한 돌집에서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여인과 집을 향해 서둘러 걸어오는 남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매화꽃 머리에 내려앉은 듯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그렇게 당신과 평생토록 매화 향 가득한 이곳에 작은집 하나 지어 두고
오론 도론 산다면 참으로 황홀하겠다.
*오론 도론- 오순도순의 제주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