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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쏜 Dec 22. 2018

메밀꽃은 인연을 만나게 해준다

메밀꽃밭에서/ 25x25cm/한지에 채색/2017 by.루씨쏜


바다의 어부들은 파도가 일었을 때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메밀이라 불렀다. 파도의 거품처럼 새하얀 메밀꽃이 제주의 가을을 가득 채웠다. 제주에 와서 처음 만난 메밀꽃. 

이효석 님의 메밀꽃 필 무렵 때문에 메밀은 봉평이 유명하지만 사실 메밀의 48%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메밀을 가장 많이 재배하고 생산하는 곳은 제주도이다. 요즘은 드라마 '도깨비'로 잘 알려진 제주의 메밀꽃밭이 있지만 어쩐지 공원 조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리 감동적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손이 비교적 덜 닿았다는 오라동의 메밀꽃밭으로 향했다. 주소도 정확치 않아 근처에 차를 대고 물어 물어 찾아 들어갔다. 정비되지 않은 산길을 들어가자 갑자기 만난 끝없이 펼쳐진 하야디 하얀 메밀꽃들의 향연. 저 멀리 보이는 도시와는 전혀 다른 공간인 듯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하얗게 흐드러졌다. 정돈된 듯 정돈되지 않은 공간이, 드넓은 곳에 우리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순간을 더 꿈처럼 느껴지게 하였다. 

 

메밀의 꽃말은 연인, 인연 그리고 사랑의 약속이다. 그래서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김고은에게 메밀꽃 가득한 그곳에서  메밀꽃을 내밀었는지도 모르겠다.언뜻 들으면 인연과 연인은 같은 말 같지만 한자도 뜻도 모두 다른 말이다. 연인 [戀人] 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이고 인연은 사람 인이 아닌 인연(因聯) 인할 인 , 인연 연을 써 만남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그러니 연인에서 부부의 인연이 되는 것은 전생의 수많은 인연이 칠천 겁 겹치고 겹쳐져 만들어지는 귀하디 귀한 만남인 것이다.

 

검푸른 밤하늘을 칠하기 위해 쪽을 우린다. 냄비 한가득 밤하늘이 우러 난다. 검푸른 쪽빛은 검은색과는 다른 새벽을 닮은 희망의 색이다. 쪽빛을 하늘과 대지에 뿌린다. 한지가 쪽빛으로 물든다. 그리곤 하늘을 밝혀줄 별과 달을 , 땅에는 순백색의 메밀꽃을 피워 놓는다. 그 가운데 연인에서 인연이 되려는 두 사람을 담는다. 여자의 손에는 그에게 받은 메밀 꽃다발이 꼬옥 쥐어져 있다.사방에 피어난 메밀꽃과는 다른 의미의 그것일 것이다.별인지 꽃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사방에 눈처럼 휘날린다.모두가 축복하는 그런 밤이었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드라마 <도깨비> 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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