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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쏜 Mar 16. 2019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이유

자전거 타기, 32x32cm, 한지에 채색, 2017 by.루씨쏜


나는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속도감이 느껴져 즐겁고 귓가에 스치는 바람도 좋다. 제주에 오면서 자전거를 하나 구입했다. 나의 로망이 듬뿍 담긴 바구니가 달린 민트색 빈티지 자전거. 집 앞에 대놓고 머리가 복잡하거나 답답할 때면 우리 집 고양이 도롱이를 바구니에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쭉 돈다.

작고 조용한 마을이라 자전거 타기가 좋다. 돌담 사잇길을 지나면 귀여운 동네 개들도 보이고 길가에 빼꼼히 핀 노란 유채꽃들도 인사를 한다. 늘 마을을 내려다보는 듬직한  한라산도 보인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자전거를 타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인양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밖에 가기 무서워하는 겁쟁이 고양이 도롱이도 바구니 안에 얌전히 앉아 이곳저곳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가끔 동네를 벗어나 멀리까지 갈 때도 있다. 그래 봐야 5분 10분 거리이지만 시끄러운 도로 길이 아니라 나만의 비밀 길로 간다. 비닐하우스를 지나면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그곳을 신나게 내려가면 작은 숲길이 나타난다. 이렇게 오솔길을 혼자 달릴 땐 폭풍우 치는 바다처럼 성났던 마음이 이내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오르막, 내리막, 오솔길 곳곳을 달리면서 생각에 잠긴다. 삶의 장면들이 빔을 쏜 영화처럼 곳곳에 나타나 풍경과 함께 스쳐 지나간다. 오르막을 지날 땐 힘들었던 어릴 적 기억이, 내리막을 내려올 땐 즐거웠던 청춘이, 오솔길을 지날 땐 평온한 지금이 떠오른다. 하지만 어떤 한 기억에도 머무르지 않고 자전거 타듯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두 발 자전거는 달리지 않으면 서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페달을 밟아 달려야 한다. 나를 붙잡는 잡념들을 풍경과 함께 떠나보낸다.자전거는 후진이 없으므로 페달을 세차게 밟아 그저 앞을 향해 달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한다.

 

답답했던 가슴이, 복잡했던 머리가 텅 비어 버렸다.  

이제야 채울 수 있겠다.

내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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