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파도와 만나게 된다.
승풍파랑(乘風破浪)
승풍파랑, 25x25cm, 한지에 채색 ,2017 by.루씨쏜
제주에 살게 되면 꼭 하고 싶던 버켓 리스트가 있었다. 서핑이 그중 하나였다.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는 내게 서핑은 물에 떠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인생 최대의 도전처럼 느껴졌다. 제주의 서핑은 대부분 중문색달해변에서 하지만 파도가 세고 깊은 수심이 무서워 다른 곳을 알아보았다. 이름도 생소한 '소금막 해변'을 그렇게 가게 되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표선해수욕장 옆 자그마하고 한적한 해변이었다. 사람도 없고 파도도 잔잔해 이미 초보 서퍼들이나 카이트 서퍼들이 많았다. 모래바닥에 누워 보드에 올라타는 연습, 누워 손으로 노를 젓는 연습까지 몇 번을 반복한 후에야 입수를 할 수 있었다. 금세 멋지게 타는 모습을 상상했건만 서지도 못하는 신세 라니... 물도 많이 먹고 파도에 얼굴을 실컷 맞고 나니 정신이 없었다. 파도를 탄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렇게 연습하기를 수차례, 한두 명씩 서기 시작했고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멋진 폼은 아니었지만 서서 파도를 타고 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산신령처럼 보였다. 마음이 다급 해지고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극복해가는 찰나
어.. 어라!!! 섰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파도가 나를 지탱하고 밀어냈다. 그때의 기쁨과 전율이란...!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파도와 만나게 된다.
잔잔한 파도를 만나기도 하고 때론 거친 파도를 만나기도 한다.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잘 타기 위해선 파도가 오는 순간을 잘 잡아타는 적절한 타이밍도 중요하고 보드 위에서 중심을 잘 잡고 서는 평행 감각도 필요하다. 파도를 이기기 위한 근력과 유연함 그리고 자연스럽게 파도를 타는 박자 감각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기회라는 파도가 왔을 때 그것을 타려면 수많은 노력과 단련을 통해 힘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것은 마음의 근력일 수도 있고 실력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인생을 균형 있게 잘 가꾸고 있어야만 행복이란 파도를 잘 잡아 탈 수 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라서 어느 하나만 충족되어선 행복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인생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조절하는 균형감각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또한 다른 서퍼들이 파도를 탄다고 해서 내가 함께 탈 필욘 없다. 억지로 타면 다른 서퍼들과 부딪쳐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나만의 박자가 필요하다. 내가 준비가 되었고 나의 높이에 맞는 파도가 왔을 때 멋지게 타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덮쳐오는 파도를 뚫고 나오기 위해 스스로 만든 한계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다.
옛 중국 고사에 승풍파랑(乘風破浪)이란 말이 나온다. 이는 바람을 타고 험한 파도를 헤쳐 나간다는 뜻으로 원대한 포부를 비유하거나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하여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나아감을 비유하는 말이다. 여전히 바닷속을 헤매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자.
수많은 연습 과정 중 하나일 뿐이고 몇 번이고 다시 올라와 결국 타내면 된다. 전보다 조금 더 유연하고 익숙하게 말이다. 그저 필요한 것은 용기와 기다림뿐이다. 그러면 언젠가 꼭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