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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Jun 15. 2018

어떤 감각

토막소설 #3

그 대화들이 그립다,


작은 일에도 크게 기뻐하고 또 크게 슬퍼하는 그 사람은, 상기된 얼굴로 그 기쁨을, 때로는 슬픔을 몇시간이고 토해내곤 했다, 그러다 난데 없이 내 생각이나 감정이 궁금해 못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나 역시 생각을 “토해낼 것”을 명한다, 난 그 명령이 귀여워서, 어쨌든 정성껏 말들을 토한다, 그 말들에 그이는 감격하거나 아니면 못마땅하여 나를 끝까지 몰아붙혀서는, 어쩌면 별 상관도 없는 일로 결국은 싸우기 일쑤였다,

생각해 보면 놀랍도록 타인의 일을 자기화하는 것도 재능이지 싶다고, 당시에는 그 따라갈 수 없는 감정들이 힘겨웠는데, 지금은 어찌된 건지 그 감정을 따라 나누던 이야기들이 그리워서 견딜 수가 없다,


매일이, 몹시도 고스란히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서, 아니면 틀어져 버린 일상이 힘겨워 다시 일상을 간절히 구하는 사이, 내가 더이상 아무것도 감각하지 못하는 구나 싶어, 그래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 문득 그 사람이, 내려앉는다, 마주본 모니터 앞으로, 잠들자 돌아누운 침대머리 맡으로, 살포시, 들키지 않으려는 듯, 그렇게 가만히, 내려앉는다,


그 사람과 감각하던 그 모든 것들이, 토막 토막, 조각 조각, 이젠 온전한 기억도 아닌 것들, 멋대로 편집된, 다 해진 누더기, 웃긴 것은,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잃는 것이 두렵다는 거다, 이제는 쓸모를 잃은, 추억일 수도 없는, 그 너절한 감각들,


밤산책, 내 발등에 또 다시 가라앉은 그이는, 나를 길 한가운데 묶어둔다,

과거가 현재를 묶어두면, 그것은 과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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