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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Aug 09. 2018

불안이라는 실존

국립극장 NT Live 연극 <헤다 가블러>


헤다 가블러는 예르겐 테스만과의 결혼으로 헤다 테스만이 된다. 그들은 방금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 이제 막 박사학위를 따서 대학에 임용되기를 바라는 예르겐, 그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그와 결혼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헤다는 그렇게 위태롭게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그들 앞에 예르겐의 대학 동창이자 헤다의 옛 연인인 예일러트와 이제 그와 연인이 된 헤다의 동창 테아가 등장한다. 술로 방탕한 생활을 하던 예일러트는 테아의 도움으로 술을 멀리하고 걸작이라 칭할만한 연구업적을 이룬다. 헤다는 왜인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일러트와 테아의 관계도 못마땅하고 능력있어 보이는 예일러트도 마음이 불편하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회포를 풀자며 밖으로 나간다. 테아는 예일러트가 다시 술을 마시게 될까 불안하다. 그 밤 그들은 밤새 취한다. 예일러트는 옛 버릇을 못 버리고 그 밤 사고를 내고, 더욱이 그의 연구 성과물마저 분실한다. 예르겐은 그것을 주워 집으로 가져온다. 그 사이 자책하며 예르겐의 집을 찾은 예일러트에게 헤다는 원고를 찾았다는 것을 숨기고, 괴로워하는 그를 자살하도록 종용한다.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 곧 밝혀질 진실 앞에 그녀도 자살을 택한다.


왜 일까. 그녀는 왜 사랑하지도 않는 자와 결혼했으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한 이들을 조롱하는지, 그리고 급기야 그들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고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지 이해가 쉬이 되지 않는다.


무대 한쪽에는 커튼이 쳐진 창이 있고, 창 앞에는 꽃이 가득 꽂힌 양동이들이 놓여있다. 헤다는 그 꽃들을 한동안 바라보다 온 방안에 집어던지고, 몇몇은 주워들고 벽에 붙여둔다. 그것은 마치 그 시대를 사는 무수한 여성들의 모습 같다. 창가에 놓여서 물을 주는 대로 자라며,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꽃. 그녀가 버려진 꽃을 주워 벽에 꽂을 때 그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암시 같다. 그러나 양동이 물일지언정 그 물을 떠나 벽 한쪽에 전시된 꽃은 점점 시들어간다.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 연극 내내 그녀는 헤다 테스만으로 불리지만 연극의 제목은 헤다 가블러다. 결혼 전의 성,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름. 그녀에게 선택지가 있다면, 좀 더 아름다울 때 자신을 원하는 남성을 선택해서 결혼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져 권태롭고 지루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무엇을 선택해도 자신의 욕망과 무관한 것에, 실은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 수 없는 환경들에 신물이 난 것 같다.


연출을 맡은 이보 반 호프는 이 연극을, 19세기 중산층에 대한 연극이 아니며,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에 대한 연극도 아닌 오히려 삶의 의미를 찾고, 동정을 구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고 있는 실존주의 연극이라고 설명한다.


헤다 가블러가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 그녀는 그 외로움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는다. 그녀는 마치 실험에 임한 사람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와 자기와 관련된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들이 그들의 행위와 감정을 따라 몸부림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 실험에 임하는 자신을 마치 시약처럼 사용하며, 스스로를 어디로도 도망할 수 없도록 그 실험에 묶어둔다. 그렇게 같이 파멸하는 것, 자신의 외로움과 불안을 모두에게 전염시키는 그 마음을 응원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란 그런 무자비한 마음을 가진 존재임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이 연극을 통해 어떤 교훈도 바라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저 범인凡人이라 외로움과 불안 앞에 그저 타인에게 기대거나 외로움과 불안을 못 본체 하나, 누군가는 그 외로움과 불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결국에 그 속에 빠져버리기도 하는구나 생각했다. 헤다 역의 루스 윌슨의 연기는 칭찬 받아 마땅했고, 이미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 연출가 이보 반 호프의 연출은 불안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정이 너무나 충만하게 무대를 차지하게 했다. 19세기의 불안이 21세기에도 여전한 것은 인간이 이토록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 일거다.



이보 반 호프 Ivo van Hove 연출, 헨리크 입센 Henrik Ibsen 원작

국립극장 NT Live 연극 <헤다 가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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