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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r 13. 2017

아래층 사람들(楼下的访客)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BIFAN 2016) 리뷰 2탄

이 영화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은 어마어마했다. 물론 영화는 재미있었다. 소재 자체의 파격성, 경악과 유머를 오가는 연출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두려웠던 것은 이 영화에서 소비되는 여성, 그 여성을 대하는 남성들의 태도를 관객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楼下的访客)

아담 추웨이 Adam TSUEI(1959년생, 男)

Taiwan | 2016  | 97min  | DCPColorFiction  | 18  | 감독데뷔작


빌딩의 임대주 얌은 건물에 세를 주어 먹고 산다. 그는 세입자들의 방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들을 몰래 감시하는 것으로 소일한다. 그들의 생활패턴을 읽어내고 기록하고 낄낄대며 날을 보내던 준 세입자 잉그루가 살인하는 것을 목격한다.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었던 얌은 잉그루의 속을 떠보나, 그녀는 오히려 담담하게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니라, 세입자들의 규제를 풀어주는 능동적인 임대주가 되어볼 것을 제안한다. 세입자들의 생활패턴을 잘 아는 얌은 그때 부터 그들의 생활에 개입하며 오해와 유혹의 덫을 여기저기 뿌려둔다. 여지없이 걸려든 이웃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파국으로 몰아넣어 걷잡을 수 없는 아비규환의 지옥을 만든다. 하지만 이 지옥도는 온전한 스릴러라기 보다는 코메디에 가깝다. 스릴러 틈틈히 끼어든 유머는 이 지옥도의 끔찍함을 중화시킨다. 그 중화가 온당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빌딩 안에는 임대주 얌, 살인하는 여인 잉그루, 체육교사, 초능력자라고 스스로 믿는 청년, 불륜인 게이커플, 아이 딸린 이혼남, 섹시한 회사원이 함께 산다.  이 중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은 아이 딸린 이혼남과 섹시한 회사원 정도다. 나머지는 범죄를 저지르기에 온도와 습도가 잘맞는 이 온실같은 빌딩에서 사생활 침해와 인권침해, 범죄 은닉과 방조, 살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범죄를 저지른다. 극 중 여성캐릭터는 3명. 이혼한 아빠와 사는 소녀는 비중이 그리 없어서 패스. 한명은 살인하는 여인 잉그루. 청순한 모습으로 맨살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살해하는 사이코패스, 그리고 다른 한명은 평범한 회사원 여성인데, 거의 창녀처럼 그려진다. 몸으로 이득을 취하려고 하고 그래서 만나는 이들에게 대접받지 못하고 욕을 먹거나 맞거나 또 그렇게 다른 남자를 모욕주다 다시 또 얻어 맞는 꼴이다. 이런 영화에서 제대로된 여성 캐릭터를 바라는 건 말이 안된다. 그저 다른 시선의 영화들이 많이 나오길 바랄밖에. 이 불편한 영화를 나 역시 지루하지 않게 보았고, 어마무시하게 자극적이므로. 인간의 본성이란 이렇게 추악한 것이라고 웃음 섞어가며 말하는 감독의 표정이 보이는 듯 했다.


가장 끔찍했던 장면은, 섹시한 회사원을 짝사랑하던 체육교사가 그녀의 방에 숨어들어 여자를 덮칠 때 그를 지켜보던 임대주 얌이 "그래야 남자지!"를 외친 순간이였다. 그게 네 본성이다. 자고로 남자라면 본성대로 여자를 덮쳐야지 라고 말하는 그의 대사가 극장안에 퍼질 때, 나는 몸소리가 쳐졌다. 이건 정말 코메디인데, 이 대사를 여기 앉은 관객들이 코메디로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걱정된 것이다. 정말 저 따위 것을 남자다움으로 인식할까봐서, 스스로를 그렇게 짐승으로 격하하지는 않겠지 설마하며 나를 다독였지만 걱정은 한자도 줄지 않았다. 재밌게 보았다는 옆자리 친구에 말도 곧이 들리지 않았다. 이제 도저히 이런 장면들을 보며 웃을 수가 없는 현실이 더 무섭긴 하다만. 보호받을 만한 여자가 되지 못하면 저렇게 창녀취급 받거나 쳐맞거나 하는 건 아닐까 싶어져서 등골이 송연해졌다. 부천영화제는 이런걸 즐기는 영화제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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