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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요리를 못할 수 있다

채소 인형 만들기

by 여유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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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고 해서 모두 요리를 잘 하는 것은 아니고, 아이라고 해서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뭐든 잘 먹는 것은 아니다. 요리를 싫어하고 못하는 엄마를 둔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간이 잘 맞지 않아 무맛이라고 평가받는 요리도 아이는 잘 먹어준다. 가끔 인상을 쓰거나 맛이 없다는 말을 하기는 해도 말이다.


시간에 쫓기며 사는 워킹맘. 요리를 하고 싶어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엄마들끼리 모여하는 고민 중에 하나가 아이의 아침 메뉴인 것을 봐도 그렇다. 아침 메뉴를 이야기하다 보면 저녁은 어떻게 챙겨 먹는지까지 고민이 확장된다. 반찬을 사 먹는다는 엄마, 대충 후딱 해 먹는다는 엄마 등 각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똑같이 내리는 결론이 하나 있다. 두부, 계란, 김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영양가도 있으면서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반찬이 두부 부침, 계란 프라이, 그냥 꺼내기만 하면 되는 김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두부, 계란, 김은 늘 채워져 있다. 거기에 급할 때 유용한 햇반까지. 게다가 반찬은 대부분 사서 먹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이 반찬만큼은 내가 꼭 만들던 시간도 있었다. 국 끓이면서 동시에 반찬을 여러 개 만들어야 하는 요리의 세계. 그런 동시다발적인 능력이 내게는 없더라. 못하기에 서툴고 서툴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상황. 집에 있는 시간의 다수를 요리에 쏟을 수만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아이만 사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반찬 배달은 시작됐다.


누군가 그랬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작은 노동을 귀이여겨야 한다고. 현대인들은 그 작은 노동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말이다. 작은 노동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음식, 빨래, 청소와 같은 것이었다. 물론 삶의 기본이 되는 노동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더도 덜도 없는 24시간. 회사에 대부분을 나눠주고 나면 아이랑 함께 놀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작은 노동까지 챙길 몸과 마음의 여유가 참 부족하다. 요리를 빼버린 상황에서도 잠을 줄여가며 사는 일상이니 말이다.


그렇게 재촉하며 시간을 쪼개 아이들의 끼니를 챙기는 엄마의 마음을 아이들은 알까. 그 마음을 모르기에 반찬 투정을 하는 것이겠지. 오늘의 놀이는 편식을 하는 친구들을 위해 준비했다. '채소 인형 만들기'.


집에서 시든 채소들을 가지고 엄마들이 모였다. 그리고 함께 놀이는 깜깜한 가방에서 채소 구출하기 놀이로 시작했다. 장난감의 유혹에서 아이들의 관심을 함께 놀이로 돌리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엄마들의 전략은 성공. 작은 소리로 머뭇거리며 "수업하기 싫은데..."를 말하던 아이도, 장난감을 찾으러 떠나려던 아이도. 얼른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차례를 애타게 기다렸다. 커다란 가방에 준비된 채소들을 모두 넣고,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가방 입구를 좁게 한 뒤 한 명씩 나와서 가방 안의 채소를 만져보고 무엇인지 상상한 뒤 꺼내는 단순한 놀이. 아이들은 조마조마 까르르르 너무 신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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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출된 채소는 이제 아이들의 작품으로 변신할 시간. 옥토넛을 좋아하는 아이는 잠수함을 만들고, 이쑤시개 쑥쑥 꽂히는 재미가 한껏인 아이는 고슴도치를 만들고, 고사리 손으로 힘을 꼭꼭 주어가며 무를 직접 잘라 인공위성을 만들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만들고 싶다고 방울토마토는 얼굴이 되고, 좋아하는 포도를 먹는 사람을 만들고 싶다고 사람의 배 위에 포도를 꽂아두고,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만든다.


누구 하나 같지 않고 다양한 생각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기에 더욱 재미있는 시간. 초코곰과 젤리곰이라는 동화책에서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세상은 과자처럼 달콤해진다'라고 했다. 각각 다른 아이들이 함께이기에 이 시간이 더욱 달콤한 것처럼 엄마들의 다름도 이해를 받았으면 좋겠다. 엄마들도 다 다르기에 요리를 잘할 수도, 못할 수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음을.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육아의 방법이 존중받고 이해받을 수 있다면 어쩌면 육아가 조금 더 달콤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함께 놀이는 이렇게 >

0) 준비물 : 집에 있는 채소, 아이들이 안전하게 채소를 자를 수 있는 칼, 이쑤시개

1) 커다란 가방에 준비된 채소를 모두 넣기

2) 아이들이 차례로 나와서 가방 속에 손을 쑥 집어넣고 무슨 채소일까 상상하면서 채소를 꺼내보기

3) 접시에 모은 채소를 자르고 이쑤시개로 이어서 멋진 작품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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