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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Jun 16. 2018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복직한 지 보름

집으로 들어오는 나를 본 하이디의 첫마디,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8시였다. 6시 퇴근 시간을 고작 30분 넘겨 사무실을 나왔고 버스를 조금이라도 빨리 타기 위해 복잡한 강남 거리를 뛰었는데 결국 늦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어머니께서는 어서 저녁을 먹으라고 하시지만 회의를 하며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었다는 거짓말을 한다. 밥을 차리고 먹는 그 10~15분의 시간이 아까웠다. 9시면 침대에 눕는 아이에게 남은 시간은 1시간. 1분이라도 더 하이디와 놀아야 했다. 엄마를 고파하는 아이에게 아이가 고팠던 내게 저녁밥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일을 묻는 내게 아이는 되묻는다. "엄마는 회사에서 뭐했어?" 회의, 회의, 회의. 회의가 이어진 날이었다. 회의를 했다고 대답하려다가 멈칫한다. 하이디가 친구들과 토론하는 수업시간에 아무 의견도 말하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올라서였다. 친구들이 자기의 의견을 싫어할까 봐 겁이 났다는 하이디. 일부러 과장해서 말했다. "엄마는 회사에서 토론했지. 엄청 떨렸는데 용기 내서 엄마 생각을 말했더니 친구가 엄마 의견이 너무 멋지다고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고." 


하이디는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토론 놀이를 하자고 했다. 요즘 푹 빠져있는 디즈니 캐릭터 친구들이 모여서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자기 먼저 시켜달란다. "하이디, 발표해보세요." 생일파티를 한단다. 이번에는 하이디가 나를 시킨다. "낯선엄마, 발표해보세요." 나는 정글숲으로 탐험을 떠난다고 했다. 다시 하이디가 시킬 차례. 보통은 학교 친구들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 나오세요." 내 회사 동기 이름을 부른다. 오히려 내가 엄마 친구 ○○○가 맞냐며 되물었다. 오늘은 엄마 회사 친구들이 등장할 거란다. 


왜 하이디 친구가 아니고 엄마 친구들이 나오는지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친구들에게는 거부당할 것 같던 의견이 엄마 친구들에게는 환영받을 것 같아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내 복직이 더 큰 이유라고 생각했다. 9개월 휴직을 끝내고 갑작스레 시작된 엄마의 회사생활이 궁금했을 테고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회사에 따라가고 싶기도 했을 테고 엄마는 회사가 얼마나 재미있기에 나를 두고 가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래서 엄마 회사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라며 더 과장해서 더 재미있게 발표를 했다. 


복직 전 마지막 영주 여행

하이디가 알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엄마 일이 좋아서 재미있어서 회사를 다닌다고. 그래서 엄마 일을 존중해주면 좋겠다. 회사에 안 가면 안 되냐는 말 대신 재미있게 일하고 오라고 인사를 해주면 좋겠다. 나 역시 하이디에게 내 일을 존중받기 위해 일에만 시간을 쏟지 않을 거다. 주어진 시간 내에서 즐겁게 일하려고 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무리하면서 애써가면서 오버 페이스 하지 않을 거다. 복직하면서의 결심이었다. 하이디와 내가 함께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회사도 같이 결심하면 좋겠다. 직원들이 자신의 일을 계속 좋아할 수 있도록 무리한 기대를 버리고 적정량의 업무를 배분할 결심,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워라밸을 존중할 결심, 농업적 근면성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생산성으로 바라보겠다는 결심이 필요하다. 이제 곧 주 52시간 근무 시대가 된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내년부터 적용대상이지만 기다리지 않고 이번 기회에 함께 결심하면 좋겠다. 그게 바로 하이디와 나, 회사, 더 나아가 사회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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