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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Jun 20. 2018

그녀의 배신은 결국 NO워라밸 때문

※ https://brunch.co.kr/@lucidjudge/129 '그녀의 배신' 뒷 이야기입니다. 



아이는 기분이 참 좋았다. 오랜만에 볼 유튜브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좀... 아니 많이 나빴다. 유튜브에 밀린 엄마라는 생각에 서글프기도 했다. 몸이 피곤하니 마음마저 피곤한 거라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도 TV를 허용하고 '해라 해라' 잔소리도 하지 않는 엄마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 아빠는 악역을 하지 않는지 억울하기도 했다. 


유튜브로 기분이 풀린 하이디는 집에 돌아와서도 기분이 좋았다. 원래 주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라서 일기 쓰기도 엄마랑 하는 연산 문제 풀기도 하지 않는데 연산 문제를 풀겠다고 자청한다. 29개를 채운 스티커판에 남은 1개를 채우기 위함인 것을 알지만 스스로 하겠다고 하니 반가웠다. 이왕 자발적으로 하는 것 3장에서 5장으로 늘려볼까 하는 생각도 순간 들었지만 또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릴까 봐 참았다. 


피곤했다. 눕고 싶고 자고 싶은데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수다쟁이가 됐다. 이 말하고 저 말하고 저 이야기하고 엄마를 부르고 또 부른다. 아이 먼저 얼른 재워야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어느 때와 다름없이 9시에 침대에 누웠지만 낮잠을 두 시간이나 잔 아이는 계속 말을 건다. 듣는 둥 마는 둥 아이 말에 맞장구를 치다 내가 먼저 잠에 들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엉엉 운다. 손에 꼭 쥐고 있던 책이 침대와 벽 사이로 떨어졌다는 거다. A4 종이를 여덟 번 접어 직접 만든 '캐리가 반장 되는 날'이었다


손도 안 들어가는 좁디좁은 틈 사이로 빠진 책. 긴 자를 이용해 꺼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화가 났다. 왜 캐리 TV는 봐서 그 책을 만든 건지, 왜 맨날 만드는 책들 중 그 책이 특별히 소중해진 건지, 왜 그 책을 손에 쥐고 있었던 건지, 왜 건너편 방에서 TV를 보고 있는 남편은 와보지도 않는 건지, 왜 피곤한 나는 잠을 잘 수 없는 건지. 화는 쌓이고 쌓여 결국 하이디에게로 향했다. "하이디. 니가 잘못해놓고 왜 니가 울어." 엄마의 버럭에 당황한 하이디는 울음을 뚝! 그친다. 아이의 놀란 모습을 보니 나는 왜 이것뿐이 안되나 밀려오는 자괴감. 소리쳐 남편을 불렀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화가 반가울 리 없는 남편은 나와 대치 상태를 만들고 이런 상황에 아이는 또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나의 주말 출근이었다. 당연히 같이 있어야 하는 날 같이 할 수 없는 엄마. 아이는 거기서부터 화가 났을 거다. 이런 이유로 화가 났다는 논리적인 생각이 아직은 어렵다 보니 나를 밀어내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했을 거다. 그리고 쉬어야 하는 엄마는 주말 출근으로 피곤했기에 아이의 마음을 느긋하게 살필 수가 없었다. 나도 울고 아이도 울고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마음은 개운해질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의 편지

피로한 삶에 평화가 깃들 수 없다. 피로를 줄이는 열쇠는 회사가 가지고 있다. 사실 휴직 전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바빴고 야근은 늘 당연했고 주말 출근도 큰 반감이 없었다. 좋게 말하면 열정충만 나쁘게 말하면 과대충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았고 나의 여유가 가정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느꼈고 열정은 한 곳에 쏟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야 더 큰 힘을 가진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워라밸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더 이상 피로한 삶은 거부한다. 내가 건강해야 가족이 회사가 그리고 사회가 건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워라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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