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 친구의 엄마에서 엄마 친구의 아이로

6명의 엄마와 6명의 아이들이 떠난 1박2일

by 여유수집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는 그 당시 일상을 공유하며 친해져 지금까지 관계가 이어지고, 대학교 시절 친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전학을 간 내게 초등학교 친구는 남아있지 않다. 컴퓨터나 핸드폰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때 연락을 계속 이어 줄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늘 부족한 시간. 친구들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마음을 먹고 날짜를 잡고 만나야만 한다. 분기에 1번 만나면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일까. 물론 SNS 통해 일상을 전하고 고민을 토로하기는 하지만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되는 대화의 툴이 아니기 때문에 소통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지금 각자의 상황이 다르다는 한계도 있다. 결혼을 이제 막 한 친구, 결혼을 했으나 아이가 없는 친구, 너무 일찍 결혼을 해 이미 아이가 많이 커버린 친구 등 상황이 다르다는 것은 이해의 폭이 친해졌던 그 시절과는 많이 다름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도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만나도 되고, 사내 메신저도 있으니 훨씬 잦은 소통이 가능하다. 친구들 중에는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도 있어 꽤나 상황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직장 내에서의 고민과 불만도 굉장히 크기에 주로 대화는 그 범주 안에 머문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둘까 말까 등 내 미래에 대한 아주 깊은 고민들은 어쩐지 이야기를 함에 있어 주저하게 된다.


그리고 제일 친한 관계이며, 함께 공유하는 일상의 시간 역시 제일 긴 남편 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남편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거니까. 가끔은 남편이 고민의 주제가 될 때도 있고 말이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외동맘, 워킹맘의 공통점에 함께 한 시간이 6개월을 넘어서며 공유하는 일상이 많아지다 보니 공동육아로 만난 엄마들과 친구나 회사 동료들보다 더 쉽게 고민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쉽지 않았다. 무엇인가 엄마들끼리 이야기가 깊어질 만하면 엄마를 찾는 아이들에 의해 흐름이 끊기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늘 밤에 엄마들만의 번개 모임을 하자고 이야기는 했지만 실천 역시 쉽지 않았다.


번개 모임을 한 번 하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근교로 가을 소풍을 떠나자는 이야기와 만나 1박2일 여행이 추진되었다. 아빠들과 함께 갈까를 이야기하다 첫 여행이니 엄마와 아이들만 함께 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모두가 가능한 날짜를 정하고, 장소는 기차로도 지하철로도 갈 수 있는 강촌으로 정했다. 총 12명, 차로 간다면 3대가 필요하고, 다행히 운전 가능한 엄마도 3명이었지만 운전의 수고로움, 사고의 위험, 밀릴지도 모르는 교통상황 대신 택한 것이 기차와 지하철이었다.


토요일, 상봉역에서 만난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강촌으로 향했다. 출발 시간보다 여유를 두고 역에 도착해 지하철을 기다린 덕분에 모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쪼르르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만으로도 설레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역에서 내려 화장실을 들리고 천방지축 아이들을 챙겨 나가니 막 떠나려던 리조트로 가는 셔틀버스. 엄마 한 명의 전력 질주로 붙잡아 거듭 사과를 하며 버스에 올랐다. 20분의 배차 간격을 그냥 기다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전략은 단순했다. 저녁 먹기 전까지 신나게 체력을 방전시켜 일찍 아이들을 재우고 엄마들의 밤을 즐기는 것. 전략을 실현시켜줄 도구는 비눗방울과 풍선이었다. 밖에서는 비눗방울로 안에서는 풍선 배구로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웃음도 움직임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전략은 성공. 아이들은 저녁을 먹자마자 하나둘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찾아온 엄마들의 밤은 매우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사실 근사한 숯불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계획도 고민했었으나 아이들을 건사하면서 쉽지 않을 것 같고, 여행에서까지 분주하게 음식을 해야 하는 것도 귀찮아 집에서 각자 가져온 밑반찬과 즉석식품들로 저녁을 대신했다. 신나게 뛰어논 아이들에게는 시장이 반찬이었기에 맛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엄마들의 밤을 위한 야식은 주문한 치킨과 피자로 풍성하게 채웠다.


첫 엄마들의 밤은 참 특별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중심인 모임이었고,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의 대화였다. 하지만 이 날 밤은 그토록 기대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엄마들끼리의 야외 나들이 때문인지 또 함께 한 시간의 힘인지 개개인의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성장보단 나의 성장, 아이의 마음보단 나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의 일상을 바탕으로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 고민을 나누는 친구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내 일상을 알고 고민을 헤아려 주는 사람도 필요함을 느낀다. 이렇게 물고를 틀었기 때문에 앞으로 서로에 대한 마음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그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아이 친구의 엄마가 아닌 엄마 친구의 아이로 순서를 바꿔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된다. 아이를 중심으로 친해진 관계에서 아이 중심의 이야기보다 때로는 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관계에 더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음을 배운다.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마음껏 웃고, 뛰고, 이야기하며 한 단계 더 깊은 사이로 진전된 우리들만의 여행. 6개월 동안 지속된 공동육아 모임을 더 단단하게 해 주고 더 긴 미래를 그리게 해 준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를 잇는 공동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