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염소
우려하던 일이 생겼다. 민원이 들어온 것이다. 해가 바뀌며 5살과 6살이 된 아이들 6명이 움직이는데 집이 조용할 리가 없다. 늘 아슬아슬 조마조마했지만 아래층을 잘 만나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엄마들이 조심시켜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사온지 2년이 넘었고, 아래층은 2년 동안 그대로였다. 종종 아이가 뛰기도 했지만 인터폰은 늘 조용했다. 그런데 우리집에서의 함께 놀이날, 인터폰이 울렸다. 시끄럽다고 경비실로 연락이 왔다며 조심스레 말씀하시는 경비아저씨였다. 그 말을 전하는 순간 엄마들은 갑작스레 얼음. 곧이어 아이들을 다그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뛰지 마라 살살 걸어라 아래층 집에서 잠자는 아기가 깼다고 전화가 왔다 등등
변화가 필요했다. 계속되는 긴장 속에서 놀이를 할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 마냥 주의를 줄 수만도 없다. 즐겁게 놀자고 만나서 살금살금 놀기는 우리 모임의 취지와도 조금 먼 듯하고 말이다. 우리를 반겨줄 외부 장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동네 도서관의 휴까페였다.
아이 책을 빌리기 위해 자주 들리던 도서관. 그날따라 차를 마시러 휴까페에 들렀는데 평상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는 한 엄마. 바로 운영진에게 문의를 하고, 우리의 목적대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답변에 예약을 했단다. 마땅한 장소가 없다고 생각하며 집을 고수했었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생각보다 쉽게 우리를 환영하는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외부에서 수업을 하니 가장 좋은 점은 장난감이 없다는 것. 아이들을 유혹하는 대상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함께 놀이 몰입도가 극적으로 상승했다. 장난감이 없는 낯선 환경에서 아이들은 모두 모범생이 되어 적극적으로 놀이에 참여하고 반응했다. 물론 수업을 끝내고 아이들을 마냥 풀어놓고 가지는 엄마들의 수다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과 우리를 환영해줄 식당을 찾아가야 하는 단점도 있었지만 단점이 장점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 날 우리의 수업은 '내가 그린 염소'. '내가 그린 염소' 동화를 읽고 아이들이 직접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염소를 그리고 염소를 위해 배고프지 말라고 풀을, 잘 때 춥지 말라고 이불을 그려주는 활동이었다. 작품 활동 후에는 처음으로 발표 시간도 가졌다. 중간에 다 했다며 장난감을 찾아 떠나는 친구가 없기에 가능했다.
한 아이는 염소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 바다 위의 섬에 사는 염소를 그렸고, 한 아이는 기다란 풀이 가득한 풀밭에 사는 5살 염소를 그렸고, 한 아이는 염수라는 이름을 가진 염소와 염소라는 이름을 가진 양을 그렸고, 한 아이는 알록달록 풀밭에 사는 곰 친구가 있는 염소를 그렸다.
작품 활동 후 발표를 통해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니 그냥 단순했던 미술활동이 이야기 만들기로 확장이 되었다. 물론 5살, 6살 아이들이 처음부터 술술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는 못한다. 센스 있는 엄마 선생님의 질문이 필요한 순간, "이름은 뭐야? 염소는 몇 살이야? 여기는 어디야? 이 친구는 누구야?" 아이들의 생각을 열어주는 질문에 아이들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즐거워했다. 친구의 염소와 내 염소가 같은 나이여서 염소끼리 친구가 되기도 하고, 친구의 염소 이름이 마음에 들어 내 염소의 이름을 친구 따라지어주기도 하며 아이들은 자신의 것에서 친구의 것으로도 관심의 범위를 넓혀간다.
이야기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친구의 이야기에 또 자신의 이야기를 보태는 아이들을 보며 스토리텔링이 인간의 본능이 맞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은 또 함께 자란다.
< 함께 놀이는 이렇게 >
0) 준비물: 스케치북(또는 도화지), 색종이, 풀, 가위, 색연필 등
1) '내가 그린 염소' 동화책 함께 보기
2) 색종이 위에 염소를 그리고 자르기
3) 도화지에 염소를 붙이고, 염소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다양하게 꾸미기
4) 그림 내용 발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