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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Sep 16. 2020

서울에서는 몰랐던 삶

아담하고 다정한 노란색의 2층 건물, 그 앞에 펼쳐진 파릇파릇 잔디 운동장. 하이디가 다니는 초등학교다. 학교를 둘러싼 담장은 나지막한 돌담. 돌담의 시작과 끝에는 돌하르방이 서서 드나드는 아이들을 살핀다. 나 역시 학교를 나서는 하이디를 맞이하기 위해 돌하르방 옆에 섰다.


고개를 두리번. 두 손 높이 흔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자 무거운 바이올린 가방을 흔들며 달려오는 하이디. 천천히 오라는 내 말은 바이올린 가방에 맞고 튕겨 나간 듯했다.


"엄마, 나 조금만 놀고 갈래."


이 말이 그리 급했구나. 시간 맞춰 가야 할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맞춰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웃으며 답했다. "그래!"


허락을 받아 놓고도 뭐가 급한지 가방도 벗지 않고 도로 뛰는 하이디. 친구에게로 향한다. 가방을 벗어놓고 놀라는 말은 다행히 하이디를 제대로 찾아갔다. 친구와 함께 내게로 돌아와 가방을 벗는다. 가벼운 웃음을 하늘로 던지며 뛰어가는 아이들. 이번에는 철봉으로 향한다.


매달리기, 땅따먹기, 잡기 놀이를 하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바닥을 살피다가 손바닥을 들여다보다가 하며 분주하다. 대체 무엇을 하는 건지 10배 줌을 당겨 사진을 찍으며 알아챌까 싶었지만 모르겠다. 다가가 물어볼까 싶어 바닥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지만 도로 앉았다. 엄마가 끼어들면 놀이의 재미가 달아날 테니까.


아직은 엄마랑 노는 것도 좋을 10살 아이들. 내가 보낸 텔레파시가 닿았는지 내게로 다다닥 달려온다. 숨도 고르기 전에 손바닥부터 펼친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벌레.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데 아이들은 해맑게 쓰다듬는다. 민달팽이다. 집이 없어 '민'을 붙여 부른다며 설명까지 해준다. 내게 보여주기 위해 뛰어온 것은 아니었다. 민달팽이에게 물을 주기 위해 물통이 있는 가방으로 달려온 것. 쨍한 날씨에 땅이 바짝 말라 달팽이가 힘이 없다며 걱정을 한다.


물을 공급해준 민달팽이는 바위 위에 올려두고 다음 관찰 대상은 공벌레다. 공벌레를 잡아 데굴데굴 굴리는 아이들. 동그랗게 몸을 말아 데구루루 굴러가는 공벌레의 실제 모습을 마흔 살이 돼서야 처음 보게 됐다. 신기해 덩달아 쪼그려 앉았지만 아이들처럼 용감하게 만져보지는 못했다.


"아줌마도 굴려보세요."

"아줌마가 만지면 공벌레는 죽을걸?"

"에이, 안 그래요. 살살 잡으면 돼요."


하이디 친구는 손바닥을 펼쳐 내 눈 가까이 공벌레를 가져다줬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주먹 불끈 쥔 두 손은 내 무릎 위를 떠나지 못했다. 겁쟁이 엄마를 구원한 건 하이디. 자기가 굴린다며 손바닥 위 공벌레를 조심스레 잡는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기에 긴장한 표정으로 얼른 바닥에 공벌레를 놓아줬지만 엄마보다는 낫다.


도시에서는 알아채지 못했던 벌레가 함께 노는 친구가 됐다. 자그마한 시골 학교에서 20세기처럼 노는 아이들. 시간을 뒤로 사는 듯한 모습이 정겨웠다. 더 어렸을 적부터 땅을 파고 놀았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여기에 새로 발견한 친구는 벌레뿐만이 아니었다.


비 오는 어느 휴일. 하이디의 친구 가족과 함께 자연휴양림을 찾았다. 비가 오기에 역시 찾아간 곳이었다. 비옷이 첫 번째 보호막이 되어주고 숲이 두 번째 보호막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숲의 향은 물기를 머금었을 때 더 깊고 진하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곰솔 나무가 많네."


나무에 걸린 팻말에서 '곰솔'이 계속 등장하자 중얼거린 나의 한 마디. 얼마나 많은지  찾아보겠다는 아이들의 도전은 나무 이름 찾기 놀이가 됐다. 처음에는 이름 글자만 확인하더니 같은 이름이 다시 보이자 아이들은 특징을 찾았다. 나무를 쓸어보기도 하고 두드려 보기도 하고 나뭇잎이 어떤 모양으로 달려 있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몸으로 기억한 특징은 다음에 등장한 나무 이름을 맞추는 데 사용됐다. 제일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곰솔은 이제 쓱 보기만 해도 맞추게 됐고.


왕쥐똥나무, 꾸지뽕나무, 때죽나무와 같이 재미있는 나무 이름을 보고는 깔깔깔 웃음이 터지고, 새덕이, 까마귀베개, 합다리나무와 같이 특이한 나무 이름은 왜 붙여졌는지 짐작해보며 아이들은 10개가 넘는 나무 이름을 알게 됐다. 몇몇 팻말에는 이름의 기원이 적혀 있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공식적인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많은 이야기가 더 중요했다. 까악 까악 까마귀 소리를 내더니 삐질삐질 새어 나오는 웃음이 섞여 주거니 받거니 둘이서 설명해야 알아들을 수 있었던 까마귀베개. 까마귀가 나뭇잎에 누워 자기 때문이란다. 다음 나무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엄마, 도덕에서 덕이 착한 마음 맞지? 분명 착한 새가 다시 태어나서 '새덕이'가 됐을 거야."

"아니야, 새가 어떻게 나무로 태어나? 동물이고 식물인데? 새가 열매를 덕덕덕 소리 내며 먹어서 '새덕이'야."


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지거나 꽉 들어찬 것을 말하는 숲. 숲을 이루는 나무를 하나하나 구분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키가 큰 나무, 작은 나무, 곧게 뻗은 나무, 넓게 펼쳐진 나무 정도의 구분만 가진 채 온통 초록빛으로 기억할 뿐이었다. 하지만 숲은 각기 다른 나무들이 모여 있었다. 제각각 이름을 가진 채. 그저 푸른빛, 그저 숲 향기 정도로 기억됐을 휴양림이 더 넓게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더 많은 이야기가 들리는 듯했다.


"엄마, 저 나무 곰솔 맞지?"


나무 이름은 하루의 기억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굣길 하늘을 향해 곧게 선 나무를 보고 하이디가 물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확신할 수 없는 나. 하이디의 판단을 믿으며 나의 자신 없음을 감추며 목소리에 흥분을 실었다. "어! 맞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야자수에도 각자 다른 이름이 있을 거라며 알려달라는 하이디에게 솔직히 고백했다. 엄마도 나무 이름을 잘 모른다고. 나무 도감을 사서 찾아보자고.


벌레를 만지고 나무 이름을 불러주는 삶. 여기에 계절에 따른 꽃의 순서도 알게 됐다. 이사를 막 왔을 때 피어 있던 민들레와 철쭉을 지나 수국과 치자꽃이 피더니 이제는 해바라기를 만난다. 게다가 하루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기에 꽃이 피고 지는 과정도 함께 한다. 특히 여리여리한 연둣빛으로 피었다가 바깥쪽에서부터 서서히 자주빛, 하늘빛의 고유한 색으로 물 들더니 쓸쓸히 바래지는 수에선 인생을 봤다. 하굣길을 걸으며 만나는 이름 모를 들꽃도 어찌나 많은지. '제주도는 꽃천지'라는 말이 내 입이 아닌 하이디 입을 통해서 나왔다.


벌레도 나무도 꽃도 서울에도 있었을 텐데. 왜 서울에서는 모르고 지내다 제주도에서 발견하는 것일까. 얼마나 쉽게 볼 수 있느냐의 차이일까. 아니면 얼마나 여유를 갖고 볼 수 있느냐의 차이일까. 하교 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삶. 다음 일정이 있어 서두르는 것이 아닌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삶. 차를 타고 휙 지나치지 않고 걸으며 찬찬히 보고 느낄 수 있는 삶. 삶의 속도를 조절했기에 마주할 수 있는 순간들. 지금의 느린 순간이 천천히 흘러가면 좋겠다. 너무도 바빴던 도시의 나를 위로하고 건물 안의 삶에 익숙했던 하이디를 자연으로 꺼내 놓으며 그렇게 늘짝늘짝 흘러가면 좋겠다.



*늘짝늘짝 : 느릿느릿의 제주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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