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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Sep 28. 2020

매주 한 번 올레길 여행을 떠나다

머리카락은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 정수리는 햇빛의 열기를 가늠하고 피부는 공기의 물기를 가늠한다. 앞뒤 좌우 보고 싶은 곳을 바라보며, 팔은 바람을 가르고, 발은 땅의 굴곡을 느끼고, 다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 나는 걷고 있다.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열리는 생동감을 느끼며, 내가 움직인 만큼 나아가는 정직함을 느낀다. 편한 신발 한 켤레만 있으면 되는 소박함도 좋아 스물한 살 첫 배낭여행부터 마흔 살이 된 지금까지 나는 걷는 여행을 한다.


스물한 살의 베네치아. 동생과 복잡한 미로에 놓였다. 여행도 삼 분의 이가 지난 시점. 지도를 보면서도 길을 헤매는 우리는 길치 남매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헤매기 시작. 여행 처음으로 격렬하게 싸웠고 나는 동생을 남겨두고 저벅저벅 앞서 걸었다. 옆에 바다가 보이건 말건 뒤에 광장이 보이건 말건 불도저처럼 걸었다. 불도저는 얼마 가지 못했다. 길을 메운 사람들 때문이었다. 걸음이 느려지자 소리가 들렸다. 진한 키스를 나누는 연인의 끈적한 소리, 광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원래 자신들이 이곳 주인임을 알리고 싶은 비둘기 소리,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들뜬 마음은 숨길 수 없는 여행자들의 말소리. 소리가 들리니 표정이 보였고 표정을 보느라 걸음은 더 느려졌다. 탁! 누군가 어깨를 쳤다. "누나, 그냥 이 근처에서 맥주 마시자." 가려던 펍은 포기하고 걸으며 맥주를 마셨다. 처음으로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걸었다. 바다가, 바다 위의 배가, 그 뒤로 지는 해가 보였다. 지는 해로 물든 과장에서 이미 지나간 중세를 보았고,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에게서 오늘을 보았다. 그리고 싱긋 웃는 동생이 보였다. 그저 걸었을 뿐인데 도시가 내게로 왔고 챙겨야만 했던 동생이 진정한 동행이 됐다. 이때부터였다. 걷기가 좋아진 것은.


일곱살 하이디와 스위스 피르스트를 걷다

그 이후 무던히도 걸었다. 몇 번의 유럽, 호주, 동남아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지도는 자주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저 발 닿는 대로 걸으며 자유로웠다. 발 길이 닿는 공간과 시간은 오롯하게 내 것이 되는 듯했다.


마흔 살, 제주도로 이사를 왔다. 제주도에 사는 동안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 올레길 완주였다. 풍경에 녹아든 파란색, 주황색 화살표와 리본만 보며 걸으면 되는 길. 지도를 보지 않고도 걸을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제주도의 매력을 구석구석 알 수 있음은 당연히 좋았고. 하지만 마음먹었다고 바로 걸을 수 있지는 않았다. 인적이 드문 으슥한 길이 곳곳에 섞여 있어 여자 혼자 걷기는 위험하다기에 동행을 구해야 했다. 이제 막 이사 와서 아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은 걷기보단 드라이브를 더 좋아할 것 같아 아쉬운 마음만 키우고 있었다. "날이 좋으니 올레길 걷고 싶어요." 동네 성당 교우들과의 티타임에서 묻어둔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자신도 걷고 싶다고 맞장구를 치는 사람, 여러 번 걸어봤다고 길 안내를 해주겠다는 사람, 그럼 나도 함께 걸어보겠노라 마음을 보탠 사람. 그 자리에 모인 네 명이 올레길 모임을 결성했다. 닫힌 모임이 아닌 열린 모임. 동네 다른 교우분들에게도 모임을 알렸다. 걷고 싶은 날 언제든 함께하실 수 있다고.


매주 수요일, 두 명 이상만 모이면 올레길을 걷기로 했다. 멤버의 대다수가 초등학생 학부모. 코스 길이에 따라 아이 하교 시간까지 학교에 도착할 수 있는 길은 온전한 한 코스를, 아이 하교 시간까지 도착할 수 없는 길은 절반을 나눠 걷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당연히 1코스부터였다. 올레길 모임 대장은 여러 번 이 길을 걸어보신 50대 후반의 교우분이 맡아주셨다. 이제껏 50대 후반 나이대의 분과 가족 외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혹시 어렵지 않을까 불편하지 않을까 마음이 쓰이기도 했지만 그건 오산. 산티아고까지 다녀오신 대장님은 연륜 있는 깊은 배려와 나이를 뛰어넘은 활동력으로 우리를 이끄셨다. 구성원 대부분을 이루는 40대 초중반의 젊은 층들이 오히려 더 빨리 지치면 지쳤지 대장님은 뒤처짐도 없으셨다.


힘겨움이 저절로 사라진 말미오름 정상에서

처음으로 함께 걸은 올레 1코스, 시흥에서 광치기해변까지. 가장 먼저 열린 올레길이라는 말에 시작이니 쉬우려니 했지만, 그 반대였다. 시작부터 어려웠다. 시작하자마자 오름 두 개를 오르락내리락한 것. 걷기를 좋아하고, 걷기 여행도 제법 많이 했고, 제주도로 이사를 온 뒤에도 서우봉을 몇 번이고 다녀왔지만 가파른 말미오름과 알오름은 쉽지 않았다. 발바닥은 뜨겁기만 하고 종아리는 이러다 터지겠지 싶었다. 숨은 턱까지 차올라 여기가 오름인지 깔딱고개인지 헷갈렸다. 한 번씩 불어오는 바람을 고마워하기보다는 원망했다. 조금 더 자주 불지 그러니. 드디어 정상. 멀리에 시선을 두고 호흡을 골랐다. 붉으락푸르락 요동치던 마음이 잔잔해지고 원망하던 마음은 다시 고마움이 됐다. 검은 돌담이 선을 그은 격자무늬 들판과 그 뒤로 보이는 성산일출봉과 우도. 모든 것을 한눈에 담은 순간, 힘겨움은 저절로 사라졌다. 차로는 올라올 수 없는 길. 걸어야만 누릴 수 있는 풍경이라 더 귀했다.


올레 3-A코스 전반부, 온평포구에서 김영갑 갤러리까지. 길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한낮이 되며 해는 뜨겁게 내리쬐고, 그늘은 사라지고. 모두가 지칠 무렵, 우리 밖에 없는 길 위에서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앞서가던 한 명이 노래를 따라 불렀고, 그 뒤를 따르던 한 명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래로 꺼져가던 에너지가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모두 어깨를 덩실거렸고 엉덩이를 씰룩였다. 누군가는 뾰족하게 검지를 세워 하늘을 찔렀고, 나는 양옆으로 어깨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박자를 탔다. 깔깔깔.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10대처럼 우리도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무엇도 아닌 그저 '나'로 마냥 자유로웠다. 춤이 웃겨서, 오랜만에 리듬 탄 몸이 낯설어서도 아닌 그저 즐거워서 웃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반짝이는 웃음은 그 순간 우리를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다.


한 주가 지난 올레 3-A코스 후반부, 김영갑 갤러리에서 표선해수욕장까지. 이날은 제일 적은 인원 4명이 참석했다. 가장 많을 때는 11명이 참석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넘게 확 줄어든 인원이지만 길 위에서는 또 다른 인연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다리 중간 부분이 고픈 배처럼 푹 꺼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배고픈 다리를 지나자마자 동네잔치 옆을 지나가게 됐다. 바다를 옆에 둔 공터에 넓게 펼쳐진 술판. 잔치라고 하기에는 조금 차분했기에 위로의 자리인가 싶어 멀찍이 거리를 두고 걸으려는 찰나, 아저씨 한 분이 우리를 불러 세우셨다. "지나가는 손님도 손님이지. 물이랑 맥주 좀 가져가요. 시원해요." 얼음과 마실 것들로 가득 찬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를 가리키셨다. 정말 가져가도 되는 걸까? 마음은 동하고 머리는 망설이고. 대장님께서 아저씨와 몇 마디를 나누시더니 덥석 받으셨다. "기쁜 마음으로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걸으며 기도할게요."


표선해수욕장, 여기가 천국!

한 손에는 맥주, 한 손에는 생수를 들고 걷는 길. 조금만 더 걸으면 기가 막힌 장소가 있다는 대장님의 안내에 따라 지금 당장 맥주 캔을 따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정말! 조금만 더 걸어가니 기가 막히게 멋진 표선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매번 보던 동쪽의 에메랄드빛 바다와는 또 다른 진한 푸른빛으로 우리를 반겼다. 갑자기 신발과 양말을 벗으시는 대장님. 우리도 뒤따라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답답한 신발 안에 갇혀 있던 발은 고운 모래 위에서 휴식을 취하리라 기대했지만 뜨겁게 달궈진 모래는 우리를 그대로 바다로 달려가게 했다. 이미 땀에 흠뻑 젖은 옷과 몸. 바다에 더 젖으면 어떠랴. 시원하니 그저 좋았다. 그냥 온몸을 풍덩 내던지고 싶었다. 구름은 적당히 해를 가리고, 뜨거웠던 발바닥은 차가워지고, 목구멍을 따라 내려가는 맥주는 알싸하고, 바람은 땀을 식히고, 눈은 탁 트인 바다를 담고. 우리는 모두 돌림노래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바로 여기가 천국이구나."


표선에서 남원포구를 잇는 올레 4코스. 옆으로는 바다가 펼쳐진 갓길 따라 쭉 걷는 길. 앞서가던 대장님이 멈춰 섰다. 차 소리에 말소리가 묻히니 각자 묵상하며 걷자고 하신다. 파도 소리에 집중하면 오히려 차 소리가 묻힐 거라고 웃으신다. 처음 올레길 모임이 꾸려졌을 때 함께 걸을 사람들이 생겨 좋으면서도 나만의 속도, 나만의 시간을 즐기기는 힘들겠구나 조금 아쉬웠다. 많이 걸어본 대장님은 이런 내 마음도 들여다보신다. 길 중간중간 묵상하자고 하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마련해주신다. 함께 걸어도 외롭지 않고 함께 걷되 혼자일 수 있어 오롯하게 내 감각과 마음에도 집중할 수 있다. 내가 걸을 길을 앞서 걸어본 사람과 함께 걸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이어짐을 느낀다. 길이 이어지듯 시간도 이어지니 길은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올레길을 안내하는 정겨운 파란색과 주황색 화살표

매주 한 번 올레길 여행을 떠난다. 큰 캐리어 필요 없이, 남편과 딸도 없이. 아내, 엄마라는 역할을 떼어 놓고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 길 위에서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싱그럽고 환해진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마법이 풀릴 때 즈음 다시 돌아오는 수요일. 올레길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나이는 더 숫자에 묶였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볼 용기도 더 커졌다. 무언가를 이뤘고, 이뤄야 하는 마흔이 아닌 여전히 무언가를 이루고 싶고,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마흔을 살게 됐다. 걸었을 뿐인데 젊어지다니! 이처럼 값싼 묘약이 어디 있을까. 매주 한 번 먹는 이 신통방통한 묘약 덕분에 지금 나는 가장 재미있는 순간을 살고 있다. 오늘도 즐겁고, 내일도 즐거울 것이다. 멈추지 않고 이어질 길 위에서.




야외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는 올레길 모임도 지금은 휴식기다. 8월 15일 이후 제주도도 피해 가지 못하고 심해진 코로나 확산세 때문이다. 어서 빨리 올레길 위에 다시 설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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