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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Oct 13. 2020

나이 마흔,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다

꼬불꼬불 굽어진 길을 내려온다. 내비게이션은 연이어 '급경사 구간'임을 알린다. 핸들을 잡은 손에는 바짝 힘이 들어가고 50km/h 구간을 40km/h를 갓 넘겨 달리면서도 액셀보단 브레이크에 발이 더 자주 간다. 핸들을 과감하게 돌려 반대편으로 방향을 트니 눈앞이 탁 트인다. 저 하늘 끝에 하늘빛보다 조금 더 진한 빛의 바다가 걸렸다. 하늘 위로는 흰 구름이 몽글몽글 피었고, 양옆은 곧게 뻗은 나무가 호위무사처럼 섰다. 잔뜩 긴장한 몸과 달리 입은 살아 탄성을 내뱉는다. "와, 정말 좋다. 이걸 보려고 운전하는 거야."


조심성 많은 안전운전자의 주행기가 아니다. 모든 게 서툰 초보운전자의 주행기다. 내 나이 마흔, 이제 막 운전을 시작했다. 사실 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끝까지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운전이었다. 운전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각 회로 때문이었다. 이 회로는 여덟 살에 만들어졌다.


어둠이 내린 도로. 횡단보도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췄다. 문을 열고 내리는 여덟 살의 나. 택시비를 지불하는 엄마를 두고 익숙한 듯 횡단보도를 건넜다. 좌우를 살피고 손까지 번쩍 든 당당한 걸음이었다. 쌩! 갑자기 무엇인가 달려드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강렬한 불빛이 쫙 벌린 상어 입 같이 달려들어 이내 나를 삼켰다.


음주운전 트럭이었다. 과속으로 달려온 차에 치여 공중으로 높이 떠올랐던 나는 꽤 긴 시간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잃었던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멀쩡하게 깨어났고, 가벼운 타박상 외에는 다친 곳이 없었다. 의사마저 기적이라고 했다. 외이 없어 모두 안도했지만 내상은 남았다. 차 안이 늘 불편했다.


"괜찮아. 편히 자."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아득히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애 초창기 함께 나선 첫 여행이었다. 운전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자는 것은 매너가 아니기에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며 몰려오는 잠을 쫓았고, 허벅지를 몰래 꼬집어도 봤지만 실패였다. 결국 고개를 푹 숙이며 잠이 들었고 그는 살며시 고개를 의자로 넘겨주었다. 불편한 차 안을 버티는 방법은 바로 잠.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공간도 차 안이라면 잠을 이길 수가 없었다.


트럭에 먹혔기 때문일까. 유독 큰 차가 무서웠다. 가까운 거리를 가거나 아이 때문에 깨어 있을 때, 버스나 트럭이 다가오면 오른손으로 문 위에 붙은 손잡이를 잡았다. 조금이라도 급한 브레이크에는 입 밖으로 비명이 튀어나왔다. 면허를 딴 이래 무사고를 자랑하는 안전한 남편의 차 안에서도 편히 있기는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운전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운전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았다. 구석구석까지 연결되는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택시가 있는 서울에 살았으니까.


"면허 학원부터 등록해." 제주 이주를 결정하고, 운전 못 해도 괜찮다던 남편이 달라졌다. 이제 도심이 아닌 산 중턱에 살게 되니 운전은 필수라고 했다. 게다가 주말 부부. 평일에 자신이 대신해줄 수 없으니 반드시 내가 운전해야만 한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미뤄볼까 싶어 제주도에 가서 학원에 다니겠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남편은 주저하는 내게 쐐기를 박았다. 제주도에서 쓸 내 차를 주문해버린 것. 이사 직후 도착으로. 면허도 없는데 차는 있는 엉뚱한 상황을 만들 수 없어, 더는 미루지 못하고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기능교육과 시험까지는 괜찮았다. 합격! 문제는 도로주행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는 도로. 나를 잡아먹을 듯 내 옆으로 달려드는 트럭과 버스.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었다. 핸들은 자주 강사 손에 넘어갔고, 강사가 몇 번을 말해야 겨우 액셀을 밟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액셀을 밟아야 사고가 안 나요." 결국 도로주행 시험을 보지 못하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차 없이도 살아졌다. 40~50분 정도의 간격으로 버스가 있기는 했지만 정해진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시간 맞춰 나가 버스를 타면 되고, 반대로 돌아올 때도 정해진 시간 맞춰 정류장에 가면 되니 괜찮았다. 급하거나 짐이 을 때는 택시를 타면 됐다. 느긋한 일상에 시간이 조금씩 더 걸리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괜찮았지만 딸 하이디가 괜찮지 않았다. 매일 가야 하는 학교가 문제였다. 아이 걸음으로 20분이 걸리는 학교. 화창한 날에는 귤밭도 보고 들꽃도 보고 저 멀리 바다도 보며 걸으니 좋았는데, 문제는 비 오는 날이었다. 비만 오면 괜찮은데 바람까지 불면 대책이 없었다. 제주 바람은 거세서 비가 오는데 바람까지 불면 비는 세로가 아닌 가로로 내렸다. 비옷을 뚫고 들어와 홀딱 젖은 생쥐 꼴을 만들었다. 이것도 추억이려니 하기에는 열 살 아이에게 무리였다. 무책임한 엄마가 되고 말았다. 다행히 등교할 때는 통학버스를 이용하고 하굣길은 종종 이웃들이 태워주면서 무책임한 엄마가 되는 날은 거의 없었지만 일기예보에 전전긍긍하는 내가 싫어졌다.


'아, 저 오름 오르고 싶다.', '오늘 날씨에는 저 바닷길을 걸어야 하는데.' 생각이 불쑥 들면 훌쩍 나서면 되는 것이 제주에 사는 로망. 하지만 이 로망을 실현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주차장에 번쩍번쩍 새 차가 서 있는데 부엌 창문 너머로 바라봐야만 하는 현실은 나를 작게 만들었다.


다시 어릴 적 기억을 꺼냈다. '나는 차 안에 있지 않았어. 차 밖을 걸었지. 운전자는 범법자였어. 법을 지키면 안전해.' 운전과 죽음을 연결시키는 생각 회로를 바꾸고 싶었다. 거듭 생각했다. 내가 차 안에 타고 있었을 때 사고가 나 적은 없었다고. 남편도 무사고 운전자. 누구나 하는 운전을 나만 못 하는 거라며 주문을 외웠다. "할 수 있다, 별거 아니다, 하면 된다."


"엄마, 오늘 운전 가는 날이야?" 날씨 핑계, 손님 핑계로 계속 미루다 드디어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하자 하이디는 매일 내 일정을 챙겼다. 운전면허 학원에 가는지 안 가는지. 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학교에 가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 용감하게 잘하고 와."


후후. 심호흡은 기본. 중얼중얼 주문을 외웠다. "괜찮아. 괜찮아." 트럭이나 버스가 다가올 때면 눈이 감겼는데 이를 막기 위해 눈꺼풀을 힘껏 위로 잡아당겼다. 이렇게 힘을 주다가는 실핏줄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런 나를 바라보는 강사는 옆자리에서 계속 말을 했다. "다른 차들은 다 자기 갈 길을 가요. 차선 넘어오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히 서울보다는 차가 적은 제주의 도로에서 나는 무사히 내 이름이 적힌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해냈다!"


운전면허증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바로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육받을 때는 강사가, 시험을 볼 때는 감독관이 내 옆자리를 지켰는데 아무도 없이 혼자 하는 운전은 불가능했다. 다음은 운전면허 연수였다. 남들은 6시간 받는 연수를 15시간이나 받았다. 그래도 불안해하는 내게 강사가 말했다. "이제 저 그만 부르세요. 혼자 연습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운전 잘해요. 걱정 말아요."


강사가 더 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 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운전 연수마저 끝났다고. 남편은 허탈해하는 내 목소리를 가뿐하게 물리치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차 키를 들고 나가라고. 혼자 운전해서 함덕해수욕장을 다녀오라고. 그래도 될까? 안 될 건 또 뭐야. 부르릉. 차에 시동을 걸었다. 기아를 D로 바꿨다. 이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출발. 내게 가장 강력한 사람을 출동시켰다. "하이디야, 엄마 진짜 운전한다. 혼자 하고 올게. 용감하게!"


급경사 길을 내려갈 때는 '부드럽게 부드럽게'를, 신호를 기다리면서는 '초록 불에 출발이야.'를, 뒤에 차가 따라붙을 때는 '보이시죠? 저 초보운전이에요. 앞질러 가셔도 돼요."를, 속도가 조금 빠르다고 느껴질 때는 '이 정도는 괜찮아. 이 정도는 가야 해.'를. 혼자 있으니 마음껏 말하며 내가 나를 진정시켰다. 분명 이 길 어디에서는 바다가 보이고, 양옆에는 나무가 서 있을 테고, 하늘은 높고 푸른데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길! 내 앞의 길만 눈에 들어왔다. 주차를 마친 뒤 시동을 끄니 온몸이 푹 꺼졌다. 바짝 긴장한 팔뚝이 아팠고, 목이 뻐근했고, 머리도 띵했다. 처음 계획은 주차 후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려 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여덟 살 때 나를 삼켰던 상어 입에서 이제야 빠져나온 것 같았다. 주차 인증샷을 찍는데 눈물이 살짝 맺혔다.


운전하고 나니 생활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하교 후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논 하이디에게서 전화가 온다. "엄마, 다 놀았어. 이제 데리러 와." 전화를 받으면 3분 만에 하이디와 만나고, 땀 벅벅 하이디를 편하게 집으로 데리고 온다. 날이 너무 좋아 카페에서 글을 쓰고 싶다면, 하이디 등교 후 차를 끌고 함덕해수욕장으로 간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으면 끝. 노트북도 책도 몇 권. 하나도 무겁지 않다. 차가 있으니. 마트에서 이렇게 많이 사면 들고 갈 수 있을까의 걱정도 더는 하지 않는다. 카트를 끌고 차로 가서 몽땅 집어넣고 출발하면 될 일. 아직 남편을 마중하러 공항에 가보지도 못했고, 오름이나 휴양림을 찾아가 보지도 못했지만 괜찮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결국 해내고 말 것을 알고 있기에. 상어 입에서도 탈출했는데 못할 것이 무엇이랴. 제주도는 내가 평생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운전을 하게 했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상쾌하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멀다. 너무 아름다운 가을. 오늘은 하굣길 하이디와 함께 서우봉으로 나서야겠다. 한껏 빛날 바다를, 바람에 춤을 출 갈대를 두 눈에 담고 와야겠다. 가는 길에 보일 새파란 바다와 곧은 나무, 끝을 모를 하늘도 담을 거다. 몇 시에 버스가 도착할까. 더는 버스 시간표를 보지 않는다. 이제 나는 오너드라이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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