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따기 체험
다른 공동육아 또는 엄마들의 모임에서도 이럴까. 아니면 워킹맘으로 구성된 우리 모임만의 특징인 것일까. 모임 운영과 관련된 논의 안건을 정리하고, 안건에 대해 토의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이 회사에서 하는 회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산 정리, 자료 정리, 결과 정리 등에 있어서도 보고서 작성이 준용되고, 의사 결정도 분명하고 빠르다. 거기에 추진력 또한 높다. 정해지면 망설임 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모임 운영 방식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함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가끔 고민이 된다. 모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우리는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애정을 나누고 키우는 육아 모임이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고민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보다 깊게 나눌 시간 말이다.
아이들끼리 노는 시간 동안 엄마들의 수다가 매주 이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이 시간은 대부분 육아나 개인 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로 채워진다. 말 그대로 수다다. 아이들에게 시선을 온전히 거둘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 집중이 필요한 이야기는 꺼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수다 역시 필요하다. 해방구이자 탈출구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엄마들이 분리되어 조금 더 집중되는 환경에서 모임 운영과 관련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봐 줄 다른 누군가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아빠들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빠들을 공동육아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엄마와 아이들의 친밀감만큼 아빠들과의 친밀감도 높아진다면 이 모임 역시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처음부터 너무 욕심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서로 낯선 상태에서 처음 만났다고 해서 아빠들에게 그런 상황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아빠들을 이 모임에 보다 빨리 정착시키는 것이 우선 아닐까. 아빠와 함께 하는 공동육아를 위한 야심 찬 첫 단추는 엄마, 아빠, 아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채우기로 했다. 그게 바로 봄이 오는 길목의 딸기 따기 체험이었다.
찾아보니 딸기 따기 체험이 가능한 농장은 많았다. 문제는 일정이었다. 일곱 가족의 일정을 모두 맞추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결국 전원 참석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21명 중 20명이 참석 가능한 날짜로 추진했다. 그 한 명이 우리 아이의 아빠인 것이 아쉬웠지만 회사 일로 참석이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각자의 차로 이동을 하고, 농장에 모여 간단한 설명을 듣고 딸기를 따는 과정은 따로 또 같이의 시간이었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각자의 아이에 집중해 딸기를 따는 따로의 시간인 것이다. 생각보다 딸기 따기는 빨리 끝났다. 유기농 딸기라 딸기를 따면서 먹기도 하고 천천히 따는 아이의 손놀림을 기다려 준다고 주었는데도 딸기 두 팩은 금세 꽉 채워졌다.
농장 주인께서 장작불에 구워주시는 고구마를 간식으로 먹는 동안 아이들은 농장의 강아지와 함께 주변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엄마들은 일부러 아이들보다는 고구마에 시선을 더 집중했다. 아이들은 아빠들에게 맡기고 말이다. 어쩡하게 아이들 곁을 맴도는 아빠, 엄마들과 같이 고구마를 먹는 아빠, 아이들의 모습을 열심히 찍어주는 아빠.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놀이를 이끄는 아빠. 아빠들의 모습은 다양했지만 조금씩 '따로'의 영역보다 '같이'의 영역이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절정은 점심 식사 시간. 일부러 아빠들끼리 테이블을 만들어주었다. 운전 때문에 술은 마실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앞으로 우리 모임의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몇 번 더 이런 시간들이 마련된다면 엄마들끼리의 회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아빠들과 아이들끼리 '함께 놀이'를 하고 엄마들은 그 시간에 회의를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