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초등학교에서 제주 초등학교로의 전학은 쉬웠다. 읍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했더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 이름이 적힌 종이를 건네줬다. 그 종이를 들고 해당 초등학교 교무실로 찾아가면 전학 완료. 중학교도 서울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배정해 주니 초등학교 전학과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여겼다.
제주에서 중학교 배정원서를 작성하는 시기, 선생님께서는 서울에서 재배정을 받을 것인지 신학기 전학을 할 것인지를 물어보셨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지레짐작하고 있던 내용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서울 교육청에 문의했다.
“제주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이사하는데요. 중학교 진학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이사를 언제 하시는데요?”
집을 내놓기도 전이라 이사 시기는 불확실한 상황. 전세 만기는 1월 말이었지만 혹시 모르니 보름 정도 여유를 더해 답했다.
“미정이지만 아무리 늦어도 2월 중순 전에는 이사할 계획입니다.”
제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중학교를 진학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2월 7일 전에 이사가 완료되면 재배정을 선택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신학기 전학을 선택해야 했다. 재배정은 거주지 학교군 내에 결원이 있는 학교를 후보로 전산으로 추첨해 배정하는 방식이었고, 신학기 전학은 뺑뺑이를 돌리지 않고 거주지 학교군 내라면 학교를 선택할 수 있으나 선택한 학교에 결원이 있고 선착순으로 결원은 채워지는 방식이었다. 재배정은 뺑뺑이로 집에서 먼 학교가 배정될 수 있다는 불안이 있었고, 신학기 전학은 입학식 날이 되어서야 학교가 확정된다는 불안이 있었다.
서울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려 했는데, 재배정을 받으면 도보와 버스로 30분을 가야 하는 중학교에 갈 수도 있으니 재배정이 내키지 않았다. 2월 7일 전에 이사가 완료되더라도 신학기 전학을 택하기로 했다. 가고자 하는 중학교의 현재 결원 현황을 살펴보니 학년별로 10명이 넘어 신입생도 비슷하리란 예측이었다. 아무리 선착순이라지만 입학식날 전학이 흔한 일은 아니니 10명 안에는 가뿐하게 들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2월 3일에 서울로의 이사를 마치고, 서울 중학교의 재배정이 끝나고, 설 연휴도 끝난 2월 14일. 교육청에 전화했다. 진학하고자 하는 중학교 결원 현황이 궁금해서였다. 아직 학교별 취합이 덜 되어 2월 마지막 주에 다시 문의하라는 말에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해당 학교 교무실로 전화했다.
“제주에서 중학교 배정을 받았고요, 입학식날 전학을 하려는데요. 혹시 신입생 결원 현황을 좀 알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보통 24명이 한 반이었는데 올해는 신입생이 많아서 한 반이 28명이네요. 현재로는 결원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출산이 늘었다는 흑룡띠도 아니고, 왜 갑자기 올해 신입생 인원이 늘어난 건지. 불안 지수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아무리 결원이 없어도 한 자리는 있겠지 희망을 품고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교육청에서 1번 대기표를 받겠노라 다짐했다.
2월 마지막 주, 바짝 긴장한 채로 교육청에 전화했다.
“##중학교는 결원이 10명이네요.”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번 높아진 불안감은 쉽게 낮아지지 않았다. 낮아지려다 말았다. 10명이어도 신입생 전학이 몰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7시에 집을 나섰다. 커피를 사서 7시 40분에 교육청에 도착하니 내 손에는 대기표 7번이 쥐어졌다. 내 앞번호가 모두 나와 같은 중학교에 진학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안정권이었다. 텀블러에 담긴 카페라테가 따뜻하게 몸을 데우며 부드럽게 넘어갔다.
9시 접수 시작과 함께 9시 16분에 목표했던 중학교로의 배정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1차 관문 통과. 배정 통지서를 받았다고 해서 해당 중학교 진학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배정받은 중학교로 가서 담당 선생님과 함께 우리 집을 보여줘야 했다. ‘이 집에 진학할 중학생이 진짜 살고 있어요!.’를 확인시켜 줘야 중학교 배정은 확정됐다.
엄마가 교육청에 가느라 7시에 집을 나섰고, 아빠는 출근을 위해 8시 집을 나섰으니 혼자 집에 있던 딸은 잠옷 바람으로 담당 선생님을 맞이했다.
“이 방이 선유 방인 걸 선생님이 확인 좀 할게.”
나보다 아이가 더 적극적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꺼내 보여 드리고, 피아노 위에 있는 트로피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걸 보여주고, 후다닥 졸업장도 찾았다.
“그래, 고마워. 우리 ##중학교에서 만나자.”
선생님과 함께 다시 학교로 돌아간 나는 그제야 반 배정을 받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나눠준 책자를 챙겨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미션은 남아있었다. 두 시 입학식 전까지 교복을 사야 했다. 교복 아닌 사복을 입고 와도 된다고 했지만, 이왕이면 튀지 않기를 바라 서둘러 교복사로 갔다. 이미 교복 제작은 완료된 시점. 남아있는 것 중 아이에게 맞는 것을 구입해야 했기에 재킷은 한 사이즈 작은 것, 조끼는 한 사이즈 큰 것을 입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구색을 다 갖출 수 있어 다행으로 여겼다. 스타킹을 사서 교복사에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전학 온 표시 내지 않으며 입학식에 무사히 도착했다.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 무리로 섞여 가는 딸을 보며 팽팽했던 긴장이 풀렸다. 입학식 내내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은 아이의 뒷모습이 대견했다가, 살짝 뒤를 돌아 나와 눈 맞추며 샐쭉 웃는 앞모습에 짠했다가, 긴장이 풀리며 찾아온 두통에 중학교 학부모로의 생활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마음 묵직했다가, 다정해 보이는 담임 선생님에 안심했다가.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오가는 많은 감정 중 그래도 제일 앞서는 건 오늘의 모든 미션을 성공한 안도였다. 서울이라서 복잡한 건지, 중학교라서 복잡한 건지. 일말의 여유도 없는 하루였지만 스타트라인에서 헛발질하지는않았으니 됐다. 아무튼 딸은 제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중학교로 무사히 입학했다. 앞으로의 날들도 무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