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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Feb 22. 2024

제주에서 서울로 이사하다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고 이삿날이 정해지자 이삿짐센터를 정해야 했다. 부동산에서 알려준 이삿짐센터에 전화했다.      


“2월 1일에 제주에서 서울로 이사하려고 하는데요.”

“2월 1일요? 신구간이네. 신구간에는 도내 이사만 합니다. 육지 이사는 손해거든요.”     


제주에 살며 알게 된 신구간. 신구간은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 사이로,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제주로 내려온 신들이 1년의 임기를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고 새로운 신들이 내려오는 교대 기간을 말한다. 교대 과정에서 신들이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집을 옮겨도 괜찮다는 속설에 따라 제주에서는 대부분 이사가 이 기간에 이뤄진다. 24년의 신구간은 1월 25일부터 2월 1일까지였고.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에 연락한 이삿짐센터는 신구간이라 이미 예약이 꽉 찼다고 했다. 이삿짐센터에서는 내게 서둘러 알아보라는 조언까지 보탰다. 왜 난 신경 쓰지도 않았던 신구간에 이사하게 된 걸까. 이삿짐센터가 없어서 이사를 못 하는 게 아닐까. 이사하기 싫었음에도 이사하지 못할 상황이 되자 초조했다.


다행히 이사 가능한 업체 두 곳을 찾아 방문 견적을 받았다. 큰 책장도 책을 포함해서 안 가지고 가고, 책상도 안 가지고 가고, 큰 의자도 안 가지고 가고, 대형 트램펄린도 안 가지고 가고, 냉장고와 세탁기도 빌트인을 사용해 없고, 옷장도 따로 없음에도 이삿짐 규모는 4.5톤으로 책정됐다. 어른 한 명과 아이 한 명의 짐이 뭐가 그리 많은지. 한 업체는 제주에서 이사를 주도한 팀장이 육지까지 따라간다는 책임감을 장점으로 내세워 마음이 끌렸지만 계약은 다른 업체와 했다. 계약한 업체는 제주 이사 팀장과 육지 이사 팀장이 달랐지만,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할 때 이용했던 업체로 당시 만족했던 경험이 더 마음을 당겼다.    

  

제주에서 육지로의 이사는 당일에 이뤄지지 않는다. 제주에서 짐을 채운 이삿짐 트럭이 그대로 배에 오른다. 트럭은 바다를 건너 육지로 가서 육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해 이삿짐을 푼다. 1박 2일의 여정이다. 하지만 나는 하루를 더 추가했다. 이삿짐 트럭이 제주항에서 하루 더 시간을 보내고 육지에 오기를 바랐다. 빈집으로의 이사가 아니라 제주로 이사 오기 전 세 가족이 함께 살았고 제주살이 동안은 남편이 혼자 살았던 집으로의 이사였던 탓이다. 4.5톤 짐을 서울집에 끼워 넣기 위해 서울집을 정리할 시간이 하루라도 필요했다. 목요일 제주에서 짐을 빼고 토요일 서울에서 짐을 푸는 일정이었다.      


이사 전날 엘리베이터에 안내문을 붙였다. 이삿짐 트럭이 주차할 공간이 필요하기에 주차 양해를 구하는 안내였다. 4년 동안 이웃이었던 분들과 이별할 생각을 하니 마음에는 묵직한 돌이 쌓였다. 특히 무, 상추, 파, 귤 등 종종 우리집 문고리를 채워준 옆집과 윗집 이웃에게는 메모와 함께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받은 마음에는 너무 작은 보답이었지만 그 작은 마음이라도 전해야만 묵직한 돌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았다.  


짐이 거의 다 빠지자 다음 세입자가 내가 살던 집에 도착했다. 분명 내 집이었는데, 다른 사람의 집이 될 생각에 어색하고 불편했다. 떠나는 사람과 달리 찾아오는 사람의 설렘이 부러웠다. 분명 내 선택으로 떠나는 것이면서도 떠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벚꽃이 정말 예쁜 집이에요.’, ‘수국을 보러 다른 명소 갈 필요 없이 단지 산책길에 수국이 만발해요.’, ‘앞마당에는 치자꽃이 가득 피니 치자꽃 계절에는 문을 열어두세요. 향기가 한껏 밀려와요.’, ‘여름에는 배롱나무에 꽃이 펴요. 해 질 무렵 산책에 나서면 더 예뻐요.’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만 건넸다. 말이 밖으로 꺼내지면 꾹 눌러둔 아쉬움도 함께 쏟아질 것 같았다. 살면서 하나씩 발견하며 감탄할 기쁨을 미리 빼앗고 싶지도 않았다.    

  

이삿날은 부슬비가 내렸다. 그나마 쏟아지는 비가 아니라 다행이었는데 안개가 자욱했다.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인지, 아름다운 제주를 안개로 가려 미련 갖지 말고 떠나라는 뜻인지. 안개처럼 눈앞이 자주 뿌예졌다. 습기가 차고 차면 결국 빗방울이 되는 것처럼 눈앞을 자주 뿌옇게 만들던 습기도 결국 눈물이 됐다. 이삿짐 잘 뺐냐는 걱정과 진짜 가는 거냐는 인사 때문이었다. 진짜 가는 거였다. 하지만 영영 가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만 이별일 뿐이다. 언젠가 다시 꼭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하고 또 하며 무겁고 또 무겁게 아쉽고 또 아쉽게 제주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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