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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Feb 29. 2024

빽빽한 서울에서 진 빼지 않고 버티려면

서울에 오니 외출이 싫다. 운전하면 빽빽한 도로에서 좁고 좁은 틈을 비집고 차선을 변경해야 하는 긴장감에 진이 빠지고, 밀리는 도로에서 약속 시간에 늦을까 초조해하며 진이 빠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빽빽한 사람들 틈에서 좁은 내 자리를 지키느라 진이 빠진다. 외출 한 번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니 외출을 꺼리게 된다.      


제주로 내려가기 전만 해도 매일 성북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했다. 빽빽한 버스 안 손잡이 하나에 의지해 부족한 잠을 채우기도 하고, 손잡이를 타인과 나눠 잡느라 손가락을 다 끼워 넣을 자리가 없어 검지 하나만 손잡이에 걸어두고 모바일로 장보기 미션을 완수하기도 했다. 사람들 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버티는 일상이 힘들었지만 당연했고 또 괜찮았다. 크게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제주 그것도 시골에 살다 보니 서울의 빽빽함은 남의 이야기가 됐다. 버스를 타면 언제나 자리가 비어 있었는데, 그 텅 빈 버스마저도 잘 타지 않았다. 초보 운전자도 품어주는 널널한 도로 위를 직접 운전하며 다녔다. 도로 위 차들은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다닥다닥 붙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차선 변경이 가능하도록 안전거리를 확보하며 달렸다. 운전자들은 앞차 운전자가 버벅거리며 운전이 미숙해도 경적을 울려 눈치 주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기다려주는 매너가 있었다.      


서울에 와서야 제주의 도로가 다시 보였다. 제주의 도로는 급한 사람들이 모인 도로가 아니라 여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도로였다. 물론 어떤 사람은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내 차에 바짝 붙어 달리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가 드물어 오히려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의문을 품었으니까. 인구밀도가 낮아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넓은 제주에서는 긴장이 줄며 에너지 소모도 줄어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너그러워져 긴장이 더 낮아지는 선순환이 생겼고.      


Unsplash의 Ant Rozetsky 

아이와 함께 성북에서 강남을 다녀왔다. 집으로 오는 길, 한 시간 남짓 만원 버스에서 서서 왔다. 나야 만원 버스 경력자이니 손잡이 하나 붙잡고 내 자리를 잘 지키고 섰지만 아이는 달랐다. 만원 버스에 처음 타보는 아이.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서는 게 쉽지 않을 터. 게다가 자리도 내리는 문 근처에 잡은 터라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상황에서 아이의 얼굴은 점점 노래졌다. 버스가 급브레이크를 밟자 휘청거린 아이는 나를 거세게 치고 말았다.      


“엄마, 미안해.”

“괜찮아. 엄마는. 그래도 다른 사람한테는 이러면 안 되니까 잘 잡아.”     


아이에게 이제 너는 서울에서 살아야 하니 빽빽한 버스는 당연하다고 알려주지만, 씁쓸한 마음은 짙어졌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도로든 그 어디든 서울의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지켜내는 법은 없을까.


“이제 앞으로는 이런 버스를 자주 타야 하는데 어쩌지?”

“버스 타기 전에 단 걸 좀 챙겨야겠어. 당충전을 하면 더 잘 서 있을 거야.”

“자세도 연구해 보면 어때? 잘 서 있을 수 있는 자세가 있을 거야. 오늘은 처음이니까 많이 흔들렸을 거고.”

“그런가? 엄마는 안 흔들리던데 비법이 뭐야?”

“발바닥에 힘주기.”     


사실 내게도 비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말했다. 그러면 아이도 아이만의 비법을 찾지 않을까. 이미 서울로 돌아왔고, 아무리 제주가 좋아도 당장은 돌아갈 수 없으니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지켜내는 비법을 찾아보려 한다.      


내가 찾은 첫 번째 비법은 이왕이면 걸어 다니기다. 예전에는 지하철에서 내리면 당연하듯 마을버스를 탔지만 이제는 걸어간다. 빽빽한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와 다시 마을버스의 빽빽한 사람들 틈으로 들어서느니 사람 적은 골목길을 걷는다. 오르막길을 올라야 해 힘이 들기는 하지만 사람들 틈에서 지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좁은 공간에 나를 계속 놓아두기보다 너른 공간을 찾아 나서는 하이에나가 되어야겠다. 서울의 빽빽한 사람들 틈에서 여유를 잃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 제목의 사진: Unsplash의 Mathew Schwar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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