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유수집가 Feb 08. 2024

딸의 이별여행

딸은 제주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이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로 First 바이올린 단원이면서,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현악 앙상블의 악장이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 2시부터 6시까지 네 시간을 연습하는데 싫다는 소리 한번 없이 매번 연습을 기다렸다. 오케스트라는 방학 때마다 캠프도 가는데 4박 5일 일정으로 도내 리조트에서 합숙 연습을 한다.    

  

이번 겨울 캠프는 1월 23일부터 1월 27일까지였다. 제주집 전세가 1월 31일까지라 1월 안에 서울로 이사해야 하는데 걸림돌은 오케스트라 겨울 캠프였다. 처음 집을 보러 온 신혼부부와 이사 일정을 맞추려면 오케스트라 캠프 전에 이사해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서울로 이사하고 오케스트라 캠프를 위해 다시 제주를 오거나 아니면 짐만 먼저 서울로 보내고 나와 아이는 오케스트라 캠프를 마친 뒤 올라가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다행히 그 신혼부부는 계약하지 않았다.      

23년 9월 3일, 제56회 정기연주회


오케스트라 캠프는 안 가도 그만이었다. 캠프에서는 3월 정기연주회를 준비하기에 어차피 아이는 무대에 서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는 완강했다. 반드시 캠프에 가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제주에서 제일 사랑하는 것이 제주청소년오케스트라인데 캠프에서 단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라고 했다. 나 역시 아이를 캠프에 보내지 않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평소 집 떠나는 합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이사 일정도 고려해야 하기에 혹시나 하고 슬쩍 물어봤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신혼부부가 집을 보러 왔고, 계약까지 하게 됐는데 이사일은 2월 1일로 정해졌다. 무리 없이 편한 마음으로 아이를 오케스트라 캠프에 보낼 수 있었다. 아이가 집을 떠나는 동안 나 역시 자유부인이 되어 편하게 여기저기 송별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 아이에게도 내게도 좋은 시간이었다.      

2023 송년의 밤, 비발디 사계 중 겨울의 바이올린 솔로를 맡은 딸

토요일 오후 6시, 4박 5일의 캠프를 무사히 마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차에 타는 동안에도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너무 아쉽다며 급기야 이사하기 싫다고 했다.      


“왜 집이 나간 거야. 집이 안 나갔으면 이사도 안 갈 텐데.”     


집이 안 나갈까 봐 걱정했던 나를 알았던 터라 아이는 끝까지 서울에 안 간다고 버티지는 못했다. 꽤 오래 눈물을 그치지 못하더니 오케스트라 캠프 언급 금지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자신이 진정되면 먼저 이야기를 꺼낼 테니 묻지 말라고. 아이에게 그만 울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송별 모임을 하며 나 역시 울기도 하고 참기도 하며 눈물과 가까웠던 터라 아이에게 울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이별을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한참을 울던 아이는 눈물이 잦아들자 굳은 다짐을 꺼냈다. 제주청소년오케스트라 지도위원이 되어 꼭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다. ‘꼭 제주도여야 하니? 서울에서 오케스트라 활동하는 꿈은 어떠니?’ 엄마의 욕심은 보태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이루어질 거라고, 다시 돌아와서 단원들에게 나도 단원이었다고 이야기하면 얼마나 멋지겠냐며 응원만 보탰다.      


2월 1일이 되어 서울로 이사를 하고 제주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이 아닌 토요일이 됐다.      


“지금 막 연습 시작했겠다.”

“지금 파트 연습하겠다.”

“지금 전체 합주할 시간이야.”    

 

토요일 오후 내내 오케스트라를 떠올리던 아이는 연습이 끝난 뒤 제일 친했던 오케스트라 단원 동생과 통화하며 오케스트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전해 들었다. 오케스트라 사랑은 서울 와서도 여전해 바이올린 연습할 때면 캠프 때 연습한 교향곡을 연주해보곤 한다.     


“엄마, 엄마는 제주도 사람 중에 누가 제일 보고 싶어?”

“엄마는 누구, 누구. 너는?”

“나는 오케스트라 악장 A언니. B동생은 자주 통화하니까 괜찮은데 언니랑은 통화하기는 좀 그러니까. 나한테 엄청 잘해줬거든.”     


아이는 오늘도 제주청소년오케스트라를 떠올렸다. 3월에 무대에서 연주될 교향곡 악보를 보며 이 파트는 이 부분이 어렵고, 이 악기는 이런 소리를 내며, 이 부분은 이런 느낌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캠프 때 이 부분을 연습할 때 C언니가 음정이 틀려서 한 박 쉬고 동시에 웃음에 터졌다는 에피소드는 여러 번 들었어도 처음 들은 듯 리액션을 했다. 이별은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기고 추억은 오래간다.

이전 05화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