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주에서 서울로 이사는 일주일이 남았다. 어제저녁 마을 사람들과 송별회를 했다. 나를 포함 9명이 각자 음식 한 가지씩과 자신이 마실 주류를 가지고 모였다. 요리에 소질 없는 나는 동네 치킨집에서 치킨 한 마리를 주문해 가지고 갔다. 김밥, 알배추 어묵탕, 떡볶이, 프리타타, 고구마 맛탕, 직접 쑨 묵, 피자, 초밥, 샐러드 거기에 레드향까지. 8인용 식탁이 넘치게 채워졌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임이었다. 맛있게 먹고 마시며 늘 그렇듯 일상을 나눴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 걱정, 남편 걱정, 겨울이니 할 법한 난방비 걱정, 바쁘지만 뭔가 헛헛한 내 걱정. 쌓이는 걱정만큼 조언과 응원이 더해지고 다시 희망이 커지는 시간이었다. 많이 웃고 많이 떠들며 식탁 위로 온기가 넘실거렸다. 평소와 다를 것 없었지만 또 달랐던 건 대화 주제가 바뀔 때의 마무리 멘트였다.
“서울 가서도 선유는 잘 적응할 거야. 아이들은 유연하니까 적응도 빠르더라고.”
“남편이랑 원래 사이가 좋잖아. 주말부부로 살다가 같이 살면 더 좋지 뭐. 독박육아도 벗어나고.”
“서울 가면 아무래도 활동 범위가 더 넓어지잖아. 더 바빠지겠네.”
어제와 비슷한 내일이 아닌 서울로 가는 달라지는 내일이 언급됐다. 하지만 달라지는 내일에 대한 이야기는 길지 않았다. 내가 의도적으로 대화를 다른 주제로 바꿨으니까. 아쉬움이 쌓이다 눈물로 쏟아질 것에 대한 방어였다. 송별회지만 기쁘고 행복하게 기억하고 싶었다. 눈물 바람을 하지 않으려는 애씀이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 이름과 동네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선물로 받았을 때, 미니 케이크 위 하트 촛불을 끄며, 이웃 덕분에 행복했노라 말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깊은 호흡으로 눌러 삼켰다. 눈물을 흘리면 이 이별이 정말 마지막이 될 것 같기에 참고 또 참았다. 4월에 제주에 올 계획을 세웠는데 그때 만나면 되고, 이웃들이 서울에 올 때 만나면 되는 등등. 다음을 기약하고 싶어 울지 않았다.
서울에서 20년을 살다 제주로 올 때도 아쉬웠다. 토요일마다 만나던 공동육아 가족들과의 이별이 아쉬웠고, 아이 단짝이라서 엄마끼리도 친해진 관계와의 이별이 아쉬웠다. 이때 이별의 아쉬움은 사람에 한정됐는데,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지금은 사람과 터전에 대한 아쉬움이 섞여 그 크기가 훨씬 커졌다. 특별히 약속하지 않아도 오다가다 만나는 이웃이라 일상에 늘 스며 있었기에 더 그랬다. 삶의 근거지가 되는 터전과 사람이 하나이다 보니 주변이 늘 따뜻했는데 그 온기를 두고 가는 마음이다.
송별회는 동네 이웃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동네 단골 가게들과도 송별회를 했다. 마지막 식사를 하고 계산하며 이사를 알렸다. 아쉽다는 인사, 한동안 찾지 않으면 궁금할 뻔했는데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 미리 알려줬으면 서비스라도 더 내어드렸을 텐데 여행하러 와서 또 들르라는 인사를 받았다. 터전과의 이별이니 동네 단골 가게들에도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쉬운 마음이 서로를 오간다. 이별이지만 마지막이라 단정하지 않는다. 물리적 거리는 멀어지지만 서로를 응원할 마음은 언제나 가까울 것을 믿는다. 어제 송별회의 마지막 인사처럼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이어질 관계다. 4년 동안 삶의 근거지였던 이곳에서의 온기를 사그라뜨리지 않고 마음에 품으며 계속 데워갈 것을 약속한다. 사랑 많이 받아 행복했던 시간들. 어제 꾹 참았던 눈물을 지금에서야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