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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가 있는 곳, 절물자연휴양림

아이와 제주

by 여유수집가

엄마는 자연 속을 마냥 걷고 싶고, 아이는 목마를 태워달라 안아달라 조른다. 엄마는 아무 생각 없이 자연을 바라보고 싶고, 아이는 가만히 머무는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다. 30살 차이가 나는 모녀. 아무리 핏줄로 이어진 사이래도, 아무리 같이 여행한 횟수가 많아도 그 취향이 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바쁜 일상에 휴식이 필요한 어른과 에너지 넘치는 일상에 늘 재미있는 것을 찾기 바쁜 아이와는 더더욱 그러하다.


이때 어른이 할 수 있는 쉬운 선택은 두 가지. 희생하거나 강요하거나. 아이를 위한 놀이시설을 찾거나 엄마를 위한 자연 한가운데로 가는 것. 하지만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휴식을 위해 떠나온 길에서 희생을 하며 자연을 그리워하는 어른의 모습도 싫고, 자연을 즐기라 강요하면서 아이의 짜증을 받아주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 계속된 검색. 어른도 아이도 즐거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바로, 절물자연휴양림이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 감귤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심어졌다는 삼나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는 세파에 다친 내 마음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내 시선을 자꾸만 하늘로 이끈다. 삼나무가 울창한 숲 길이라는 삼울길에서 시작된 절물휴양림 산책. 숲이 만드는 짙은 그늘 속에서 깊은 상쾌함을 마시며 걷는 길에 엄마는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처음에는 아이도 콧노래에 장단을 맞췄다. 나무데크의 완만한 경사는 아이가 걷기에도 수월했다. 문제는 시간. 걷는 것이 지루해질 무렵 아빠의 목마가 등장했고, 오르다 내리다를 반복하며 아이의 노래는 점점 짜증으로 변해갔다. 엄마의 느긋해진 여유도 화를 불러내야겠다 결심한 순간, 우리는 구세주를 만난다.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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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 웃는 아이의 소리, 맞장구 쳐주는 아빠의 미소. 사랑하는 이 두 사람을 자연과 함께 풍경처럼 바라볼 수 있는 여유. 행복했다. 아빠 한 번, 엄마 한 번 돌아가면서 행복을 누렸다. 하지만 이 귀한 시간도 처음에는 마음껏 누릴 수 없었다. 한 바퀴를 다 둘러봐야 한다는 목적의식 때문이었다. 15분 정도가 인내의 한계였던 것 같다. 놀이터로 기분이 좋아진 아이를 다음 놀이터에 가보자며 어르고 달래 두 시간 남짓 만에 목적의식을 달성했다.


한 번에 고작 10분에서 15분 남짓. 두 개의 놀이터를 들렀으니 길어야 30분 정도의 시간. 아이에게는 무척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개구리 시소가 있는 숲 속 놀이터. 아이에게 남은 제주의 기억이었다. 우리의 첫 절물은 15년 3월의 이야기. 그 해 7월 다시 제주도에 간다고 하자 아이는 숲 속 놀이터에 갈 수 있다며 좋아했다. 봄이 오는 길목의 절물에서 만나지 못한 가득 찬 푸르름을 다시 느끼고 싶은 내 마음도 아이와 통했기에 우리는 다시 절물을 찾았다.


고작 몇 개월이지만 조금 더 자란 아이는 조금 더 씩씩하게 걸었고, 걷다 보면 놀이터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놀이터 찾기 탐정이 되어 쉬이 지치지도 않았다. 덕분에 엄마와 아빠는 절물휴양림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렇게 얻은 더 많은 여유는 고스란히 아이에게로 전해졌다. 더 많은 시간을 놀이터에 허락한 것이다. 아이가 지겨워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마음과 함께. 그리고 깨달았다. 둘러보는 것보다 머무는 여유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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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3월, 다시 절물을 찾는 마음은 앞의 두 번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제대로 머물기로 했다. 캠핑 의자, 간식, 돗자리 모두를 챙겨 작정하고 만남의 길에 있는 놀이터부터 들렀다. 캠핑 의자에 앉아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느긋한 휴식을 누린다. 한껏 넓어진 마음으로 이제는 여섯 살이 될 차례. 놀아 주는 것이 아니라 나도 여섯 살이 되어 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았다. 더 많은 곳을 새로이 경험해야 하는 여행객이 아닌 그냥 그곳 주민의 마음으로 절물휴양림에 머물렀다.


물론 세 번 모두 좋았다. 그래서 계속 다시 찾게 되었고. 하지만 갈수록 더 좋아지는 것은 그 매력에 더 깊이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엄마도 아빠도 아이도 함께 머물 수 있는 곳. 비가 오면 정자에서 쉬고, 비옷을 입고도 놀고. 날씨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 곳. 그 매력에 한껏 취한 우리는 분명 조만간 네 번째 절물을 찾을 것이다. 이번에는 개구리 놀이터보다 나무 놀이터에서 더 많이 놀기로 약속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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