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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차, 놀멍 쉬멍 걸으멍 - 올레16코스

뚜벅이 엄마랑 제주한달

by 여유수집가

제주를 대표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한라산, 바다, 곶자왈, 현무암... 그리고 올레가 있다. 한 달 동안 딱 한 번이었다. 월령리 산책로를 걸으며 올레 14코스의 일부를 걸었다. 놀면서 쉬면서 함께 걷는 21코스의 길을 한 번으로 끝내기는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오늘은 하이디와 나와 단 둘이 보내는 마지막 날. 오늘까지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래, 오늘은 무조건 올레길을 걷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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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위해 아이들이 걷기 좋은 올레길을 메모해뒀다. 하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새별오름도 척척 오른 일곱살인데 어떤 길이든 잘 걸으리라는 기대와 힘들면 멈춰 서면 된다는 여유가 생긴 거다. 숙소에서 제일 가까운 올레는 16코스였다. 바닷길로 이어져 풍경 역시 좋겠다 싶었다. 버스를 타고 고내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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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여행가의 면모를 갖춰가는 하이디는 올레의 뜻을 물었다. 글쎄, 나 역시 궁금해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얼른 검색엔진에게 도움을 청한다. 제주방언으로 좁은 골목이란 뜻이며, 통상 큰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이라는 의미였다. 하이디에게는 좁고 예쁜 길이라고 이야기해줬다. 기대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 묻는다. "어떻게 예쁜 길인데?" "꽃도 있고, 바다도 있고, 아마 등대도 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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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칼국수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다. 엄마가 준비한 오늘의 무기는 고래밥과 마이쮸, 그리고 재미난 노래들이다. 소리에 민감한 하이디는 올롤롤로, 삐리뽕 삐리뽕, 룰루롤리 등의 말로 노래를 불러주면 숨이 넘어가게 웃는다. 한껏 하이디의 기분을 끌어올려 재미난 상황을 계속 이어간다. 걷는 것이 힘들다거나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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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완주를 목표로 하지도 않았다. 벤치가 보이면 과자를 먹으며 쉬어가고, 바닷물에 손도 한 번 담가보고, 낚시하는 사람들을 구경도 하고, 나비를 쫓아가기도 했다. 중간에 화장실을 들를 겸 카페에서 꽤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올레길의 취지를 한껏 살려 놀면서 쉬면서 걸었더니 3Km에 3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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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을 올레길에 머물게 한 가장 큰 힘은 음악이었다. 고래밥과 마이쮸도 다 먹고, 재미난 노래에 반응하는 하이디의 웃음소리가 줄어들자 나는 생각 끝에 핸드폰을 꺼냈다. 하이디가 좋아하는 프리파라 음악을 튼 것이다. 좁은 길을 앞 서 걷는 하이디의 귀를 향해 핸드폰을 들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하이디는 음악을 듣느라 힘들다는 불평 한마디, 쉬어가자는 짜증 한 번이 없었다.


아직 더 걸을 수 있는데 산모기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모기기피제에도 도망가지 않는 모기가 하이디의 얼굴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 것이다. 벌겋게 부어오른 하이디의 얼굴을 보며 더 걷고 싶은 욕심을 접었다. 손을 잡고 걸었고, 신나게 웃으며 걸었고, 앞뒤로 나란히도 걸었고, 음악 소리와 숨소리만 남기고도 걸었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서로의 온기에 마음을 전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20170921_182554.jpg 씩씩한 하이디는 집에 오자마자 친구랑 킥보드를 탄다
20170921_181529.jpg 집에 돌아온 엄마는 우아하게 홍차와 함께 노을을 누린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하이디가 말한다. "고생했어." 많이 힘들었을까 걱정스런 마음에 힘들었냐고 물으니 하이디는 대답한다. "난 씩씩하잖아. 재미있었지." 또래 친구들보다 대근육, 소근육 발달이 느려 늘 걱정했었다. 혼자 커서인지 마음도 여려 늘 신경 쓰였다. 모든 걱정은 기우다. 한 달 동안 함께 걸으며 부쩍 자란 하이디를 본다. 택시 의자에 푹 기대어 편히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고마워, 하이디! 뚜벅이 엄마랑 같이 다니느라 고생했어!"




<일곱살 하이디의 일기>

늦은 밤까지 엄마들과 친구들과 함께 한 파티와

제주도로 퇴근한 아빠를 맞이 하느라 오늘도 하이디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뚜벅이 이동 경로>

1) 레이지마마(곽지모물) > 202(배차간격 15~20분) > 고내리

2) 애월돌고래전망대 > 택시 > 레이지마마(곽지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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