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약 병아리집사 7
아이가 학교를 간다.
그다음 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병아리 집사 역할은 당연한 듯 늘 내 몫이었다.
아침밥도 미뤄가며 열심히 병아리들과 놀아주고
깔끔하게 병아리집 청소를 해주는 딸아이였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학교를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아리집은 엉망징창이 되었다.
몸집이 제법 커져서 움직임이 활발해진
개구쟁이 써니와 금동이가
이리저리 우당탕탕 육추기 안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면서 발로 마구 밟고 다니는 바람에
정갈하게 정리해 둔 병아리들의 예쁜 물통과 밥통은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처럼 아무렇게나 뒤섞이고
엎어져서 나뒹굴고 있었다.
또한 강아지처럼 배변훈련을 시킬 수도 없는 병아리들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기본 욕구를 충족한 결과
깨끗했던 하얀 베드와 깔끔했던 베이지색 베딩은
삽시간에 똥으로 뒤덮인 지뢰밭이 되었다.
사실 내가 동물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물론 귀엽고 예쁜 동물들을 보는 것은 정말 좋다.
하지만 내가 동물을 돌본다?!
그건 하기도 싫고, 영 자신도 없었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고 다시 천천히 내뱉는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속으로 수백 번 외친다.
'집사 임무 시작! '
지저분해진 베드를 빼서 새로 깔아준다.
여기저기 오염된 곳을
물티슈로 세심하게 닦아 제거한다.
베딩은 병아리가 앉기에 푹신한 높이와 양으로 깔아준다.
개구쟁이 써니와 금동이가 건드려도
그릇이 쓰러지지 않을 적당한 무게를 어림잡아보며
모이와 물을 아름답게 채워놓는다.
꼼꼼히 하다 보면 생각보다 꽤 오래 걸리는 과정이었다.
'정리와 청소를 다 마치고 나니 왠지 뿌듯한걸!'
내가 이룬 결과에 만족하며 미소 짓는다.
이내 청소를 마치고 거실에서 신나게 뛰놀던
병아리들을 다정하게 감싸 안는다?!
아니, 잡으러 다닌다.
아기 병아리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내 손을 피해 술래잡기를 한다.
놀이터가 아닌, 우리 집 거실에서 방으로 또 주방으로
나도 병아리도 소란스럽게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술래 역할은 늘 변함없이 나였다.
그래. 무작정 뛰는 건 소용없다.
나, 써니, 금동이의 눈치싸움이 이어진다.
잡히느냐 도망치느냐.
관심 없는 듯 병아리들 옆을 천천히 지나간다.
그들의 움직임보다 1초 빠른 민첩함으로
세심하게 좋은 위치를 선점한다.
뛰어난 순발력으로 정확하게 손을 뻗는다.
"잡았다!"
를 외치며 술래인 나는 병아리들을 무사히 데려와
육추기 안에 넣어주며 평화가 찾아왔다.
"즐겁게 놀았으니 이젠 집에서 좀 쉬렴."
편안하게 잘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 후, 뒤로 돌아선다.
'아뿔싸!!!'
집안이 똥밭이다.
조심조심 피해 가며 목표물을 확인하고 닦는다.
다시 거실을 깨끗하게 치우는 사이에,
써니와 금동이는 힘차게 뛰어다녀 배가 고팠는지
그릇에 담긴 모이와 물을 허겁지겁 먹는다.
그리고는 이내 배가 부른 지
집사에게 놀아달라며 떼를 쓴다.
투명한 육추기 문 앞에 서서
쉴 새 없이 문을 부리로 두드린다.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부리를 연신 움직여
귀엽게 삐약거린다.
초롱초롱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집사만 계속 바라본다.
'도무지 다른 일을 할 수가 없구나.'
오늘도 병아리 애교에 지고 말았다.
베란다로 데려가서 함께 놀아준다.
써니와 금동이는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며
오늘도 열심히 뛰어다닌다.
만족스럽게 놀이를 마친 후,
나른해서 잠이 몰려오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낮잠을 푹 자도록 아기 병아리들을 집에 데려다 놓고,
놀이가 끝난 후에 베란다 청소와
날리는 깃털을 치우는 것도 물론 내 몫이었다.
그런데..
이런 다람쥐 쳇바퀴같이 정신없이 반복되던
병아리 집사 생활에서 해방이라니!!!
물론 진심으로 시골로 가는 병아리들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사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쾌재를 불렀다.
밀린 빨래와 청소를 모두 마친 듯,
상쾌하고 후련한 심정이었다.
나는 즐거워 랄랄라 콧노래를 불렀다.
솜사탕같이 가벼운 마음이었다.
집안 곳곳에 병아리들이 남긴 깃털들을
아주 말끔히 치웠다.
우리 집에 깃털 한 개의 흔적도 남기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집안 대청소를 했다.
병아리들을 시골로 보낸 후,
아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할머니께 전화를 했다.
"할머니 병아리 사진 좀 찍어서 보내주세요."
"할머니 써니는 뭐 하고 있어요? "
"금동이는 건강하고 밥은 잘 먹고 있어요?"
병아리들의 하루를 묻고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모이 배불리 먹고, 흙바닥에서 뛰어놀다 졸리면 자고,
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대략 비슷한 일상으로 흘러갈
병아리들의 시골 생활이 뭐가 그리도 매일 궁금한 건지.
동동거리는 아이의 반응에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한 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는 것을..
아침마다 지저귀는 귀여운 삐약 삐약 소리도 없다.
움직일 때마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거실을 신나게 누비던 노란 솜뭉치들도 더 이상 없다.
삐약이들과의 긴장되고 스릴 넘치는 술래잡기도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물 한번 마시고 하늘 한번 올려다보기를 반복하는 모습에
나를 절로 웃음 짓게 했던 고 귀여운 부리도 이젠 볼 수 없다.
2주 넘는 시간 동안 병아리들과 함께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정이 쌓였던 걸까?
나도 아이도 병아리 상사병에 걸렸다.
.
.
.
그렇다고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또다시 남편의 몸에 간지러움을 동반한
빨간 점무늬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건 안되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러나 여린 아이의 마음은
나처럼 단단해지지는 못했다.
매일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열고
귀여운 병아리가 나오는 영상을 찾아서 본다.
따뜻한 한낮, 병아리들을 품에 앉고 햇볕을 쬐던
그 베란다 의자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그러다 지치면 써니와 금동이를
찍었던 사진과 영상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또 들여다본다.
며칠째 비도 오지 않고 물도 주지 않은 꽃나무처럼
아이의 마음은 바짝 메마르고 시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새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가 물었다.
"엄마 미니 메추리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