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어린이집 생활 10
처음엔 사소한 시작이었다.
"선생님 이거 콩 먹기 싫어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던
햇병아리 초임 교사 시절의 나는
아이들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어린이집 행사와 교실 내 활동을 준비할 때
내 남은 마지막 에너지 한 방울까지도
모두 아이들에게 쏟으며 최선을 다했다.
밤을 새워서 아이들과 함께할 활동 및 교구를
준비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지금 와서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면
매번 실수하고 넘어지고 많이 서툴렀지만,
두 눈은 항상 호기심과 설렘으로 반짝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내가 선택한 일이었기에
이 일은 나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에너지를 주었다.
이 열정은 아이들 식사 지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사는 아이들이 모든 음식을 골고루 잘 먹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내 기본 원칙이었다.
얼굴을 찡그리며 콩을 먹기 싫다는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돼요. 남김없이 꼭 다 먹으세요."
한 명도 예외는 없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골고루 잘 먹어야 했다.
혹여 남기는 경우가 있더라도 다 먹어야 한다며
숟가락에 떠서 아기새 모이 주듯이
한 명 한 명 끝까지 아이의 식판에 남은 음식을
열심히 먹여주며 뿌듯해하는, 나는 그런 교사였다.
반응은 매우 폭발적이었다.
우리 반 부모님들은 굉장히 좋아하셨다.
집에서는 먹지 않던 음식을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먹었다며 신기해했고,
영양가 있게 모든 음식을 골고루 다 잘 먹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선생님께 매번 감사했다.
나 또한 내 지도법에 먼지 한 톨의 의심도 들지 않았다.
자신만만 당찬 에너지의 초임 교사는
그렇게 위풍당당 교사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작은 물음표 하나가 내 마음속에서
스르륵 떠올라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 콩 엄청 싫어하잖아!
진짜로 너처럼 콩 먹기 싫어하는 아이가 있지 않을까?
그럼 식사시간이 엄청 괴로울지도 모르는데?'
내가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원칙은 정답이 아니라
나만의 고집이었고 고정관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초조하고 조급해졌다.
교사와 부모님들이 만족하는 어른의 기준이 아닌,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빠르게 앞만 보며 달리던 나는 놓치고 있었다.
바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했다.
제일 먼저 아이들의 식사시간에 구체적으로 칭찬을 했다.
“와! 당근을 다 먹었구나!
얼굴도 예뻐지고, 더 건강해지겠다”
또한 억지로 다 먹게 하기보다 새로운 음식, 먹기 싫은 음식
을 아이들이 한 번쯤 경험해 볼 수 있게 하는데 집중했다.
이전처럼 아이가 모든 음식을 무조건 다 먹어야 한다는 생각
과 지도 방법은 깔끔하게 지웠다.
"한 입만 먹어볼까?"
그리고 아이가 먹으면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며 긍정적인 행
동을 강화했다.
제일 어렵지만 꼭 해야만 하는 건 모델링이었다. 교사가 먼저
골고루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라는 생각에 이르자 싫어하던 콩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디
저트를 먹는 것처럼 상상하고 연기하며 먹었다.
"얘들아 이 초록색 콩 정말 맛있다! 입에서 사르르 녹아"
아이들마다의 개별 차이를 존중해 주었다. 먹는 속도도, 양
도 기호도 모두 다름을 인정하자 유연한 지도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놀이와 연결시켰다. 음식을 탐색하는 놀이, 아이들
이 제일 좋아하던 요리 활동, 음식 스티커판을 활용한 활동들
을 통해 아이들의 즐겁고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어갔다.
이처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지도 방법을 통해 아
이들은 점차 스스로 식습관을 조절하며 건강한 변화로 나아
갔다.
어릴 때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놓인 흰밥에서 열심히 콩을
찾아 골라내던 아이는 어린이집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위해
최대한 콩을 맛있게 먹으며 여우주연상에 버금가는 연기자
가 되었다. 그리고 그 연기는 실제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콩
을 매우 좋아한다.
동그랗고 작은 초록콩이 만든 아주 사소했던 시작은, 진정한
선순환을 이루었다.
즐거운 식습관 형성을 위해 가정에서 이렇게 도와주세요.
*식사 시간에는 TV·핸드폰은 잠시 꺼주세요
*밥 먹는 자리는 조용하고 안정되게 만들어주세요
*한 가지 음식만 고집하지 않도록 다양한 식재료를 함께
경험할 수 있게 제공해 주세요.
* 아이 스스로 먹고 정리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세요
*칭찬은 구체적으로 해주세요.
아이들의 작은 시도와 성장을 따뜻하게 응원해 주자.
긍정적인 식생활 습관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어린이집과 가
정에서 함께 협력하며 관심을 가지고 지도한다면, 아이의 평
생건강을 지켜줄 소중한 습관이 형성되고, 그 열매는 아이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