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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잠깐 멈춰볼래?

슬기로운 어린이집 생활 11

by 달빛서재

7세 새 학기가 시작되면 모든 것은 초읽기다.

학부모들은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의

출발선 앞에 선, 긴장한 선수가 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한글. 수학. 영어, 음악 등등

기본적으로 아이가 갖춰야 할 소양을

길러줘야 한다며 선행학습에 열을 올린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한글을 잘 모른 채

동화책을 들춰보며 그림과 글자를 보고

엄마가 카세트를 틀어서 들려주던

개굴개굴 개구리 이야기를 듣다가 학교에 갔다.

늦게 한글을 뗐지만

뒤늦게 읽기의 재미를 알게 된 나는

책의 바다에 첨벙 뛰어들어갔고,

깊고 깊은 심해에 닿을 때까지

천천히 깊숙이 책의 세계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한글을 떼지 않고 학교를 간다면

큰일 나는 세상이 펼쳐졌다.

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 떼기는

기본 중에 초기본인 것이다.


눈치게임도 시작이다.

옆집 아이가 창의 수학을 시작했다면

우리 아이도 뒤처지지 않게

소리 소문 없이 시작한다.

앞집 아이가 영어 학원에 다닌다면

우리 아이도 최고의 선생님과 학원을 선별해서

재빨리 등록시킨다.


학기 초와 1학기 상담 때가 되면

이제 막 튀겨낸 따끈따끈한 팝콘처럼

질문이 쏟아진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한글은 어느 정도 읽고

있어요? 학교 가기 전에 받아쓰기 연습 미리 해주시나요?"


"구구단도 다 떼고 더하기 빼기도 기본적으로 잘해야 될 것

같은데 이런 활동도 아이들이 하죠?"


"아참! 영어 특별활동 있죠! 주 2회인가요? 그거 하면서

영어학습지도 같이 하고 선생님이 아이 실력도 개별로 수시

로 체크 해주시죠?"


요리조리 나름의 눈치게임과 함께,

어린이집에서의 초등 입학 전

우리 아이를 위한 스마트하고 철저한 예비 교육을 바란다.


급 피곤함이 몰려온다.

신나는 놀이와 재미있는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주도적인 참여를 이끌고

전인적인 발달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 온 나의 지도는

모두 헛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


'어머님! 어린이집은 학원이 아니에요!'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슬그머니 넣어둔다.


스스로가 초등학교 입학생이 된 듯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을까?

어떤 걸 제일 좋아하는지

지금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았을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앞으로도 계속

앞만 보고 나아갈 아이들을 보니,

애달픈 마음이 들었다.


달리다가 물에 빠져 죽는다는 나그네쥐가 떠올랐다.

북극 근처에 사는 쥣과 동물 '레밍'은

4~5년마다 무리 지어 이동한다.

무리가 점점 커지면서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 같이 달리다가 낭떠러지 쪽으로 달리게 되면

아무 생각 없이 뒤따라오던 무리들이

앞의 무리를 밀어서 결국 모두

호수나 바다에 빠져 죽게 된다.

다 같이 무리 지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이런 참사가 발생한 게 아닐까?

잠시만 멈춰 숨을 고르고

내가 왜 이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공부도 재능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겐 모두 저마다의 빛나는 재능이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모두 한 방향으로 무작정 달릴게 아니라,

찬찬히 내 아이의 재능을 찾아보자.


훨훨 날갯짓하며 높이 비상할 수 있도록,

내 아이만의 '방향'을 찾는 데 공을 들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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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로 <슬기로운 어린이집 생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매 회차마다 댓글과 공감으로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는 동안 저 역시 많이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그동안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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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