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약 병아리 집사 5
써니의 털이 말랐다.
보드랍고 귀여운 태를 제법 갖추어갈 무렵,
써니의 오른쪽에 있던 금동이의 알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금동이 역시
힘겹게 외로운 싸움을 이겨내며
껍질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삐약삐약 힘차게 소리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건강하지 못했던
'건강이'의 알은
우리의 길고 긴 기다림에도
끝내 응답하지 못했다.
숨을 쉴때마다 노란 솜뭉치가 들썩인다.
물멍은 비할 바가 아니다.
한번 바라보면 너무 예뻐 눈을 뗄 수 없는
아기 병아리들이다.
늘 부화기 앞에서 하루를 시작하던 아이는
이제 새로 들인 육추기 앞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이 되면 가장 먼저 병아리들에게 다가가
쓰다듬고 보듬으며 사랑을 나눈다.
그다음은 병아리집 청소.
깔아뒀던 패드를 새 것으로 갈아주고
그 위에 푹신한 베딩을 정성스럽게 뿌려준다.
병아리들이 마실 물과 모이는
예쁜 그릇에 담아 놓아준다.
혹여 육추기 안이 답답했을 병아리들을 꺼내
거실이나 베란다의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놀게 해 준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산책도 하고,
뛰놀며 노는 모습은
작지만 생기 넘친다.
말린 밀웜을 특히 좋아하는 병아리들은
집사에게 다가와 꺼내달라며
밀웜 봉지를 콕콕 살짝씩 부리로 두드린다.
그 두드리는 모습마저도 어찌나 귀여운지.
병아리를 품에 안은 아이는
베란다 의자에 앉아 한낮의 햇살을 받는다.
햇빛 속에서 포근히 감싸인 병아리는
딸아이의 품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써니도, 금동이도
쏟아지는 햇살에 스르르 잠이 몰려오는 듯
고요하게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군다.
천천히 아래로, 아래로
병아리의 고개가 숙여진다.
평화롭고 고요하다.
시간도 바람도, 잠시 멈춘 듯하다.
작은 생명은
아이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서적 안정감을 선물해준다.
존재만으로도 마음은 잔잔해지고,
따뜻한 숨결과 포근한 체온이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과 행동에도
자연스럽게 사랑을 흘려보낸다.
이대로 쭉 행복해도 될까?
일말의 긴장감조차 스르르 녹아버린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물들고 있다.
노랑과 초록이 섞여
연두가 되어가듯,
우리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병아리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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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시간이 이대로 천천히..
아름답게 흘러갈거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