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이 먼저
기억력이 떨어져서 길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엄마의 경우에는 운동능력도 같이 떨어져서 길을 걸을 때 약간 휘청휘청하셨습니다. 한 번은 저와 같이 인도를 걷다가 뒤로 몇 발짝 뒤처지셨는데 갑자기 크게 넘어지셨습니다. 다행히 패딩을 입고 있어서 크게 다치신 곳은 없었지만, 겨울 바지 안쪽으로 무릎이 까질 만큼 충격이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도 살짝 턱이 있는 곳에서 넘어지셔서 뼈에는 이상이 없었는데도 몇 달 동안 통증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어떤 계획이더라도 어르신의 안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께서 외할머니의 요양원 입소를 망설이시면서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혼자 사시는 여유로운 아파트가 공동주거시설보다 낫지 않겠냐고 하셨을 때도 저는 낙상이 염려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조심스럽게 거동하셔야 하는데, 밤에 혹시라도 화장실 가시다가 넘어지시기라도 하면 어떡해. 빨리 병원에 가지 않으시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잖아. 요새는 밖에 나가시지도 않는데 아파트 안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게 과연 요양원보다 더 좋으실까? 내가 할머니라면 밤마다 염려될 것 같아.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저는 이미 누군가의 도움 없이 엄마 혼자 사시는 건 선택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같이 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주간보호센터 이용 시간을 늘리던지 방문요양보호 서비스를 추가로 이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바로 요양원 입소도 고려하고 알아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 건강한 세 끼
나이가 들수록 건강한 식단으로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또 가장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을 차리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엄마를 보면서 깨닫습니다. 작년 여름 루이소체 치매로 진단이 나올 즈음에 엄마께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했습니다. 원래 요리를 좋아하시진 않았지만 필요하면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서라도 가끔 반찬을 만드시곤 했는데 벌써 꽤 오래 제가 식사를 담당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면 자극이 될까 싶어 저의 생일에 부탁드린 것입니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왔더니 엄마가 미역국과 불고기로 저녁상을 차려주셨습니다.
“어머, 생일상이라고 반찬도 했네.”
“얘, 이거 하느라고 하루 종일 준비했어. 오전에 상가에 가서 고기 사고 와서 미역 불리고……. 고기도 무슨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아이고, 말도 말아라. 미역국 끓이는 것도 세 시간도 넘게 걸렸나 봐.”
파가 들어간 미역국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준비해 주신 식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요즈음에는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가도 차려 드시는 걸 어려워하십니다. 간단히 두유, 고구마 같은 간식은 드셔도 밥과 반찬을 꺼내어 드시는 건 뭔가 복잡하다고 느끼시는지 잘 손을 대지 않으십니다. 제가 저녁을 함께하지 못하는 날이면 보통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배달시킵니다.
다행히 엄마께서는 가리는 음식 없이 다 맛있게 잘 드십니다. 입에 잘 맞지 않는 새로운 음식도 시도해 보는 걸 어려워하지 않으십니다. 덕분에 플레인요거트를 음식의 소스로 내놓고 아침 식탁에 낫또를 내놓아도 맛있게 잘 드십니다.
혼자 사시면서 다른 일상에 지장이 전혀 없을 때도 세 끼를 잘 챙겨 드시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1식을 건강식으로 주문해 보기도 했는데 질리고 음식이 쌓인다고 싫어하셨습니다. 저는 식사가 제공되는 것이 실버타운의 아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사를 제대로 못 하시면 기력이 떨어지시고 활동이 위축되어 건강이 안 좋아지는 악순환이 시작되니까요. 식사 준비에 큰 무리가 없으신 어르신이라면 가끔 반찬가게에서 나물 요리 등을 주문해서 다양한 반찬을 섭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엄마보다 음식에 까다로운 편인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무엇보다 다양한 음식을 먹는 것이 입맛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침 식사를 예로 들면 집에 있는 재료에 맞춰 오믈렛과 샐러드, 고구마와 두유, 생과일과 플레인요거트, 야채죽과 낫토 등으로 매일 바꿔줍니다. 식사 준비를 오래 하면 진이 빠지니 레토르트 죽이나 샐러드 밀키트도 이용합니다.
- 같이 오래 살기 위해서는 서로 편안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엄마와 분리된 공간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직장도 다니지 않고 집순이인 제가 한집에 살면서 엄마와 공간을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따로 살면서 매일 식사를 같이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큰돈이 들기도 하고 지나치게 번거로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주치의의 추천으로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게 되면서 훨씬 여유가 생겼습니다. 주간보호센터의 이용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자세히 말할 기회가 있겠지요.
엄마의 증상이 점점 악화되어 집안에서도 계속 도움이 필요하지만 저를 알아보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라면 입주간병인을 고려할 생각입니다. 엄마의 퇴직연금으로 부족하다면 엄마의 저축이나 주택연금을 이용할 예정입니다. 이 시기에는 근처 평가 등급이 높은 요양원의 대기 상황도 확인해야겠지요.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3~4년의 대기기간이 발생할 수 있으니 미리미리 알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