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다른 질병으로 입・퇴원이 반복되면서 엄마께서 이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어렵게 되었을 무렵 이모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유료양로원, 요양원, 요양병원 등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긴 대화는 어려워서 몇 번 반복해서 말씀드리면서 노트에 써서 계속 읽어보시면서 생각해 보시라고 했습니다. 이모의 저축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비용은 충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생활환경과 비용을 들으신 이모는 20년이 넘게 선교사로 사역하신 필리핀으로 돌아가시겠다고 했습니다. 아직 그쪽에 아는 분들도 많다고 하시면서 필리핀의 양로원도 아니고 예전에 사시던 빈민가에서 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길을 잃어 집에 돌아오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아도 상관없다는 이모의 완강한 말씀을 들으니 어찌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습니다. 치매 증상이 상당히 진행되었지만, 상태가 좋으실 때는 판단에 큰 무리가 없으시던 이모의 뜻을 얼마만큼 존중해야 하는지도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이모께서 필리핀에 가시면 더 이상 제가 모든 것을 알아보고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셈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의지가 강했던 이모의 삶을 되돌아보면 마음대로 살고 싶으신 마음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습니다.
이 결정은 생각보다 뜻밖에 방향에서 생각보다 쉽게 결정되었습니다. 예전에 필리핀에 함께 계셨던 분께 이러한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절대 안 된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생활이 있고 바쁜데 필리핀으로 오시라고 얘기는 할 수 있어도 실제 도움이 될 만한 분은 없어요. 필리핀에서 생활하시던 마지막 몇 년은 다들 수군댔어요. 서울 가족들은 왜 신경도 쓰지 않냐고요.”
그러니까 필리핀 한인 사회에서 가족의 평판이 이모가 요양원에 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 셈입니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져 오면 마음대로 삶의 방식이나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결정할 권리도 없는지 모릅니다.
자식이 없는 저는 나중에 제대로 의사를 전달하지 못할까 봐 미리미리 조카에게 말해놓았습니다.
“이모는 오래 사는 게 의미가 없거든. 그냥 사는 만큼 살다 죽을 건데 혹시라도 혼자 살기 어렵거나 아파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게 되더라도 너는 신경 쓰지 마. 면회도 오지 않아도 돼. 나는 진짜 먼지만큼도 섭섭하지 않아. 네가 맘 편히 사는 게 이모에게 선물이야.”
치매 어르신은 증상도 제각각이고 처한 상황도 제각각입니다. 따라서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하나의 정답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와 일상을 만들어 나가면서도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고민을 해보았는데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드라마틱하지 않은 평탄한 일상입니다. 저는 유독 예기치 않았던 충격에서 회복하는 것이 어렵기때문에 되도록 큰 편차가 없도록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을 점검합니다. 이외에는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엄마와 함께 오래 함께 지내는 것을 목표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목표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오래 사시는 것, 엄마의 자율성을 최대로 보장하는 것, 매일 서로 즐거운 일만 하는 것, 최저의 비용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저는 함께 있는 시간을 연장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습니다. 엄마와 저에게 함께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평소 엄마께서 대화 중에 나중에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 그러한 시간이 연장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도 염두에 두었습니다.
무엇보다 엄마가 받으시는 연금과 자산이 생활하시기에 충분하다는 점도 중요했습니다. 만약에 엄마 본인의 자산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비용과 관련된 부분은 그 금액을 책임지는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시간이나 노력이 온전히 저의 것이듯 엄마의 자산도 온전히 엄마의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비용과 관련된 부분은 헤프게 쓸 필요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다면 비용 때문에 망설이지는 않습니다.
뭐가 그리 다를까 싶지만 수명을 늘리는 것이 목표인 병원의 의사와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요양원에 계시면서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하시던 이모께서 위급하다는 연락이 와서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이동했습니다. 췌장암 4기라는 진단을 받고 적극적인 수술이나 항암을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모든 가족이 동의하였는데, 3차 병원에서는 통증 관리를 위한 입원은 어렵다고 해서 근처 요양병원으로 전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연명치료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가족의 몫입니다. 항생제는 연명치료인가? 영양제는? 산소호흡기는? 무슨 처치인지 잘 모르는 스무 가지를 이용할 것인지 물어보는 연명치료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보호자는 없습니다.
이미 눈에 초점도 없고 비위관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며 어머니를 돌보는 지인은 여전히 어머니의 생명이 줄어들 수 있는 결정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거동이 어렵고 의식이 거의 없는 1등급을 받고 폐렴 때문에 병원에 임시로 입원하였는데, 모든 의료 처치를 받는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폐렴은 일시적인 병이니까요. 혹시나 내가 엄마의 죽음을 결정하는 것 같아서 다 하겠다고 했어요.”
대신 앞으로 위나 장으로 직접 영양관을 삽입하거나 호흡을 위한 기관지 삽관은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다른 가족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막상 닥치면 다른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는 첨언합니다.
장기 목표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생각보다 더 짧을 수도 있습니다. 작년에 엄마께서 루이소체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주치의께 다시 여쭤봤습니다.
“루이소체 치매 진단 후 예후가 어떻게 되나요?”
“루이소체 치매는 치매의 원인이 질병 중에서 예후가 좋지 않은 편이라 평균 기대 여명을 5년 정도 봐요. 그렇지만 약이 잘 듣는 경우도 있고 내년에도 좋은 약이 나올 예정이니 꾸준히 건강관리 잘하시면 좋을 겁니다.”
이모들의 경우를 보면 다른 분들보다 치매의 진행이 느린 편이라 평균이라는 숫자에 크게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지나치게 먼 훗날의 걱정까지 당겨서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략적인 방향성을 정하고 증상이 진행되는 대로 맞추어 대응하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