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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Oct 27. 2024

치매 어르신과 보호자: 우리 모두 무섭습니다

엄마와 생활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불확실성과 부정적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나빠지면 어떡하나, 어떤 결정을 언제 내려야 하는 걸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뭅니다. 어린이에게 반복되는 말을 할 때에는 언젠가 지금과 다르게 변화하고 성숙하리라는 기대가 있지만, 엄마께서 많이 나아지기는 어렵다는 절망감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엄마의 상태가 가장 나빠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또 가장 오래 붙들고 싶은 것은 노력하면 좀 더 오래 붙들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보다 더 두려워하는 사람은 엄마 자신입니다. 엄마께서 렘수면행동장애가 있어서 잠꼬대를 심하게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늘 왜 꿈속에서 늘 무서운 사람에게 쫓길까 궁금했습니다. 왜 항상 누군가를 소리 지르며 휘휘 쫓아내야 하는 걸까 생각해 보니 인지능력과 판단 능력이 감퇴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일이 당연히 더 어려운 일이고, 불안한 마음이 꿈으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엄마께서 기억력이 떨어지고 사람도 못 알아볼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고 하시길래 기억력이 떨어져도 살아가는 데는 큰 지장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걱정한다고 기억력이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겠지요.


저는 엄마가 기억력을 잃더라도 되도록 오래 저와 같은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망상이 심한 사람보다는 기억력이 흐릿한 사람과 더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의 세계는 점점 유리되겠지요. 이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일 것입니다.


5분도 되지 않는 “기다림(The Wait)”이라는 짧은 단편영화가 감동적이면서도 가슴을 쿵 내려칩니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임산부는 전화로 아버지의 진료 예약을 하면서 전전긍긍합니다. 옆에 앉아 있던 어르신이 임신 몇 주차냐며 슬며시 말을 걸고 다 괜찮을 거라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다들 잘 살아간다고 다독이는데도 까칠한 듯 째려보는 눈길로 괜찮지 않으면 어쩔 거냐며 쏘아붙이듯 말합니다. 어르신은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족이 있지 않냐며 위로합니다.

“복잡해요. 가족이라곤 아버지와 저뿐인데 아버지가 아프십니다.”

버스가 도착하자 임산부가 어르신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이제 가요. 버스가 왔네요.”


아버지는 따뜻한 마음과 위로의 방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옆에 앉아 있는 임산부가 본인의 딸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환자입니다. 저는 어르신 입장에서 대화가 가능하다는 상황을 “내적 일관성”이 있다고 정의해 봅니다. 어르신의 입장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도 함께 나눌 인생의 지혜가 있고 능숙하게 대화를 이끕니다. 그렇지만 딸의 입장에서 이러한 대화는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이모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요양원에 계시던 이모를 모시고 나와서 워터파크가 있는 콘도에서 며칠 지냈습니다. 이모는 현명하시고 직관력이 있는 분이라서 대화가 항상 즐거웠습니다. 엄마도 잘 알아보시고 워터파크에서도 즐겁게 지냈습니다. 콘도 주변을 산책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엄마께서 여기가 어디냐고 여쭤봤습니다.


“어디긴 어디야, 필리핀이지.”


잠깐 갸우뚱하던 이모는 오랫동안 빈민가 선교를 하던 필리핀을 떠올리셨습니다. 더운 날씨와 야자수로 채워진 산책로가 필리핀과 비슷했나 봅니다.


다른 세계에 사는 치매 어르신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좋은 경험으로 기억을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엄마와 될 수 있으면 오래 같은 세계에 있기를 원합니다. 아마도 지금 저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엄마와 저의 세계가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보호자로서는 바른 결정이 아닐 수 있겠지만, 엄마께서 현실을 혼동할 때 저는 짚어드립니다.


“엄마, 우리 여기 와 본 적 없어. 여행을 갔던 다른 장소와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우리가 처음 와보는 호텔이야. 엄마 기억 못 해도 괜찮은데 자꾸 와봤다고 우기지는 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께서는 엄마의 인지능력과 기억력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 결과로 불안도는 상승하고 저에게 더 의지하는 부작용은 있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일주일이건 일 년이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엄마께서 기억을 못 하겠다고 걱정하실 때 저는 좀 차가운 위로 비슷한 것을 합니다.

“엄마, 엄마가 기억을 못하는 건 큰 일이 아니야. 단기기억을 못 한다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성실하게 건강한 음식 먹고, 꾸준히 움직이고, 얼굴 찡그리지 말고 기쁘게 생활할 수 있으면 되지.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잘 따라주고 뭐든 부지런히 바로바로 처리하면 되지.”


엄마께서 처음으로 망상의 증상을 보이셨어요.

"얘, 그사람이 참 무서운 사람이다. 이렇게 큰일을 벌이는데 다른 사람에게 알려줘야 해."


제가 엄마를 꼭 껴안으면서 얘기했습니다.

"엄마, 그사람이 무서운 일을 꾸밀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엄마가 그사람이 불편한 건 분명한데 그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처한 상황에서 겨우겨우 살아가면 되는데, 그 여정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잃는다고 해서 맞거나 틀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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