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양육하는 일도 그렇지만 어르신을 돌보는 일도 사랑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존중과 존경만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단호한 결단을 하여야 하고, 순종하기보다는 설득하여야 합니다. 보호자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점점 많아지므로 목표와 원칙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며느리나 사위보다 딸이나 아들이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부모와 친정 부모 양쪽을 모셔 본 경험자께서 어쩌면 사위나 며느리가 더 수월할 수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돌봄에 있어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쉽게 지치지 않을 텐데 아무래도 자식 입장에서는 그게 쉽지 않아서 오히려 자주 부딪히고 감정적으로 되더라고요. 대신에 시부모를 모실 때는 의견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어서 더 답답했죠.”
누가 모시던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코로나 시기에 해외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와 함께 살던 때 엄마의 건강과 인지 상태가 나빠지니 자연스럽게 모시게 되었습니다. 가족끼리 함께 고민하고 상의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주보호자는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의무이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은근히 정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에 없었다면 결혼을 하고 직장에 다니는 언니가 엄마를 더 많이 도와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해서 당연히 책임을 맡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쁘지 않은 사람의 인생도 바쁜 사람의 인생만큼 소중하니까요.
엄마께서 처음 장기요양등급을 받으시면서 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습니다. 우선 참석자의 대부분이 아들과 며느리라는데 좀 놀랐습니다. 열다섯 명쯤 교육을 받았는데 딸은 저 하나였습니다. 아직도 딸보다는 아들이 부양의 의무를 크게 느끼는 듯했습니다. 공단에서 해당 지역의 요양기관 명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원 서비스와 지원액을 설명해 주었는데, 옆자리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저에게 질문하셔서 들은 대로 이것저것 답변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 3등급이라니 이미 힘드시겠다고 말을 건넸더니 한숨을 쉬셨습니다.
“어휴, 치매였던 시부모님을 15년 넘게 모셨어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남편이 시작했네요. 이제 내 인생 끝났어요.”
“하루에 세 시간 정도 요양보호사가 방문해서 도와주신대요.”
“요양보호사는 여자잖아요. 그걸 어떻게 해요. 내가 해야지.”
“주간보호센터도 있어요. 저는 어머니께 센터를 권유하려고요. 활동도 많이 하고, 방문 시간도 더 길어요.”
“그러면 좋겠네요. 그런데 남편이 절대 안 갈 거 같은데…….”
“어느 동네 사세요? 그 근처에 구립 평가 1등급 주간보호센터가 있네요. 한 번 방문해 보세요.”
“서울 시내가 너무 복잡해서 수원 쪽으로 이사 갈까도 생각 중이에요. 그쪽은 어떻게 알아봐야 해요?”
“그쪽에도 좋은 주간보호센터가 있을 거예요. 컴퓨터로 평가등급 다 확인할 수 있으니까 자식분에게 부탁하면 좋은 곳 골라 가실 수 있을 거예요. 직접 알아보시기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어요.”
“내가 아들밖에 없어서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요. 전화번호 좀 알려 줄래요? 나중에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할게요.”
당시 이모의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엄마의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아 마음이 많이 가라앉은 때라서 친한 사람의 전화를 받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였습니다.
“그래도 이제 아드님 도움을 받으셔야 할 거예요. 건강보험공단으로 전화하셔서 궁금한 거 물어보셔도 되고요.”
일 년이 지난 지금 정도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처음 보는 어린 사람에게도 말을 놓지 않으시는 고운 할머니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도와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죄송함이 있습니다. 건강보험에서는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개입할 수도 없고, 질문이 구체적인 경우에 더 좋은 답변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보호자 입장에서 대화라도 해드렸으면 더 좋았겠지요.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뿐더러 엄마가 외할머니와 이모를 돌보는 과정에서 보듯 조금 더 젊은 세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어르신들은 돌봄을 자기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수월하지만, 정보를 찾거나 결정을 내리고 직접 개입할 여력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돌봄을 담당할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치매어르신보다도 보호자의 생각이 중요한데, 가까운 주위 사람들이 강한 의견을 주장하면 보호자가 상처받기 쉽습니다. 가까운 지인의 아버지가 오랜 기간 자식들 도움 없이 어머니를 돌보시다가 어느 날 이제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야 할 때라고 선언하셨다고 합니다. 지인은 어떻게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낼 수 있냐고 했습니다. 이 사례에서 어머니를 어떻게 요양원에 보내냐는 말은 돌봄을 담당한 아버지께 서운하고 비수가 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지인은 아버지가 확고해서 자신이라도 함께 살겠다고 말했는데,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섣부르게 결정하고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다면 거주지를 자주 옮겨 어머니께 부담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리미리 아버지를 돕고 며칠씩 나누어 돌봄을 했더라면 아버지도 다른 결정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엄마를 돌보느라 몸보다도 마음이 지쳐서 일을 다시 시작할 여유가 없다고 했는데 언니가 '아무 일도 안 하는데 왜 지쳐'라는 말을 했을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아마 정리가 전혀 되지 않은 집 안 정리를 끊임없이 하는데 점점 더 어지러워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단계마다 가족의 역할을 다르게 나눌 수 있겠지만, 이왕이면 주보호자를 제외한 가족들도 도움이 별로 필요 없는 초기부터 관심을 가지고 작은 결정이라도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다시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의 원칙
엄마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관계 설정과 일상을 의미했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이모의 일을 도울 때는 부아가 났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 내 책임이 아닌 것을 떠맡아 일상에 영향을 크게 받고 마음에 부담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럼 어떡하니. 할 사람이 없는데. 네가 잘하잖아.”
엄마께서 항상 이렇게 얘기하곤 했는데, 저는 아직도 제가 이모 일에 관여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와 저는 다른 사람이고, 엄마께서 평지를 걷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저에게는 에베레스트 등반처럼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할 사람이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고민하면 되고, 잘하지 못하면 되는대로 하면 됩니다. 저는 그때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원치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통로이지 사랑의 수단은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서 원하는 마음이나 책임감이 넘쳐흐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역할이 보호자임을 그때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나 친척들의 기대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저도 제가 할 수 있으리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할 수 없다’는 말을 해본 적 없는 모범생컴플렉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더 큰 용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똑같은 상황에서 제가 매몰차게 이모 일에 관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후에 제가 마음의 부담에서 비롯된 일상의 무게나 우울감을 생각한다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주보호자의 역할은 절대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네가 딸/아들이니 모셔야 하지 않겠니’보다 더 좋지 않은 말은 ‘내가 아들/딸이니 우리 집에 모셔야지’라고 말하면서 배우자가 돌봄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이 가장 부담스러울 테니까요.
돌볼 사람이, 책임질 사람이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만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언니가 저의 결정에 딴죽을 걸지 않듯, 제가 외국에 거주하여 엄마를 도울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저는 언니가 어떻게 결정하던 온전히 지지했을 것입니다. 주보호자에게 어려운 결정을 하는 큰 부담이 있다면 다른 가족에게는 그 결정에 토를 달지 않는 인내가 있어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