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바람 Oct 27. 2024

치매 돌봄: 좋은사람증후군

누구나 착한 딸이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막상 어르신을 돌보다 보면 어르신이 원치 않는 일들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쉬운 예로 이모께서 운동을 하지 않고 집안에 많은 시간을 누워서 보내시니 자연스럽게 허리와 순환기에 문제가 생겼었습니다. 의사가 특별히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면서 걷기를 많이 하라고 했습니다. 해가 좋은 날 엄마와 함께 셋이 아파트 뒤 산책길에 올라 좋은 공기도 마시고 천천히 걷자고 했는데 이모는 싫다고 하셨어요.


 “오늘 날씨가 참 좋아요. 엄마랑 셋이 나가서 걸을까요?”

 “나는 힘들어서 싫어. 둘이 나가.”

 “이모, 우리 할머니도 일어나는 것도 힘드신데 매일 한 시간 넘게 걸으셨어요. 나가서 조심스럽게 살살 걸으면 괜찮다고 눈이 오는 날도 걸으셨어요. 이모는 잘 걸으시잖아요. 우리 같이 나가요.”

“얘, 너희 할머니는 걷는 거 좋아하셨어. 그렇게 걷고 돌아오신 후에 힘들지 않냐고 여쭤보면 기분 좋다고 하시더라. 나는 걷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내가 지금 허리가 이렇게 끊어질 거 같은데 가긴 어딜 가니? 산책길 가는 길도 가파르고 햇빛 알레르기도 있어서 안 돼.”

“이모, 걸어야지 허리 아픈 게 낫는대요. 할머니도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일어날 수 없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실 거라고 매일 꾸준히 걸으신 거예요. 막상 걸으면 괜찮을 거예요. 다 같이 나가서 천천히 걸어요.”


절대 못 나가시겠다고 거실에 드러누우시는 이모와 30여 분간 실랑이하다가 겨우 셋이 나갔는데 이모께서 즐거워하시고 운동기구까지 즐겁게 이용하셨습니다. 당신 입으로 나오기 잘했다고 하셨습니다. 집에서는 진이 빠졌지만, 함께 나오길 잘했구나, 조금 뿌듯했는데 문제는 며칠 후였습니다. 나가기 싫었어도 막상 나가니 즐겁게 걸었던 기억이 생각나지 않는 이모는 다시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내가 지금 허리가 이렇게 끊어질 거 같은데 가긴 어딜 가니? 산책길 가는 길도 가파르고 햇빛 알레르기도 있어서 안 돼.”


저보다 부드러운 엄마께서 달래시는데도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산책하러 나가자고 할 때마다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니 저는 설득을 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었습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내가 이모께서 싫어하는 일을 굳이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때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엄마의 기억력이 안 좋아지더라도 미리미리 관계 설정이 잘 되어서 같이 산책하러 나가는 일이 힘들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제가 엄마에게 목소리가 커지고 자꾸 짜증을 내어 도리어 제가 스스로 힘들다고 하면 보호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아프셔서 그런 걸 아는데도 화가 나요?”

“그래도 부드럽게 대해드려야죠. 어르신이 불안해하세요.”


치매 관련 안내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림 : 의사소통의 자세중앙치매센터, 『헤아림』 , 2015

어떤 방법이 좋은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 잘하고 싶지 않은 자식이 없겠지요. 하루에 서너 시간이라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직업으로 타인을 대하는 경우라면 아무래도 관여도가 떨어지니까 조금 더 수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단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족 입장에서 같은 잔소리를 하고 설득의 어려운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저와 다르게 부드러운 돌봄을 잘하시는 보호자도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을 존경합니다. 단지 제가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을 꾹꾹 누르며 억지로 하다 보면 위축되고 우울감도 커질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인지능력을 상실하는 것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제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흐릅니다.


치매 어르신을 돌본 경험이 있는 분들의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화가 나는 게 당연해요. 화가 나죠. 엄마에게 목소리라도 높이지 않으면 너무 쌓여서 폭발할 수 있어요. 짜증이라도 내요. 엄마도 다 이해해 주실 거예요.”


그중 한 분께 들은 말이 있습니다.

“저는 평생 착한 사람으로 살아와서 잘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참는 건 잘했거든요. 그런데 안 되더라고요.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저의 부족한 면을 알게 되었어요, 참다 참다 도저히 할 수 없어서 다 놓아버렸는데 저의 한계를 미리 깨닫고 다른 결정들을 했다면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모실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막 어머니께서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으신 착한 친구에게 말했어요.

“모두가 가장 행복한 해결 방안이라는 게 없고 모두 조금씩 타협해야 하는데 어머니에게만 맞추려고 하면 네 생활이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고 결국 지속이 될 수 없잖아.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시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거스르게 되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거든. 네가 어떻게 어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는지를 정해서 어머니를 설득하고 내켜 하시지 않더라도 진행해야 할 때도 있는 거지.”  


결국 중요한 것은 보호자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만 돌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외국 친구가 했던 말 중에 위로가 됐던 말을 덧붙여봅니다.


“이미 큰 감정의 짐을 지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했잖아. 네가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질병이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지 않았으면 어머니께서 이미 예전과 같은 독립적인 생활은 못 하셨을 거야. 네가 참 큰일을 했고, 수고가 많다.”


어르신을 모시는 데 관심을 두는 모든 분들께 같은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의도도 소중하지만, 어르신을 위하는 마음보다 더 대단한 것은 몸을 쓰고 노력을 하여 무언가 어르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전 02화 부모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