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의 변화
저는 이제껏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빠는 제가 성년이 되던 해에 암으로 돌아가셨고, 직장생활을 하시던 엄마께서는 늘 바쁘셔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던 딸이었지만 늦은 나이까지 혼자 살고 있어 타인을 책임지고 부양을 해본 경험은 없습니다.
제가 엄마 얘기를 하면 자식이 있는 친구나 지인들은 ‘애 키우는 것하고 똑같네.’라고 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같지는 않을 거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이 있고, 유교에서도 부자유친이라고 하잖아. 출세간을 강조하는 불교에서도 부모의 은혜에 감사와 보은을 해야 한다고 하고. 그런데 어디에도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이 없어. 왜 부모를 향한 의무감만 강조하겠어. 자식을 사랑하는 건 저절로 되거든. 그 작고 부드럽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나에게 폭 안겨 있으면 내가 그 아이의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주고 싶어서 힘들어도 또 그만큼의 에너지가 저절로 생기잖아. 물론 측은지심이 풍성해서 아프신 어르신을 보고 저절로 마음이 동하고 몸이 움직이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쪽은 아니야. 의무감으로 마음을 다잡아야지.”
간단히 말하면 부모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관계가 변화하는 것이고 의무와 부담이 커지는 일입니다. 경도인지장애 이전에도 저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그동안 덮어 왔던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극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엄마께서 엄마의 업무와 의무를 나누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엄마, 우리 이런 사이 아니었잖아. 왜 이래. 왜 엄마가 하지도 못할 일들을 가져와서 나보고 책임지라는 거야? 다 하지 마. 협회 회의에서 영어로 개회사를 할 수 없으면 그냥 통역을 쓰면 되지 왜 나에게 써달라는 거야? 요양병원에 계신 이모를 치과에 모셔다 드릴 사람이 없으면 할 수 없지 왜 나에게 부탁해?”
그러다가 엄마의 일상에도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서 엄마가 결정한 일에 제가 동원되는 일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병원도 같이 간 적이 별로 없는데 왜 얼굴에 난 뾰루지를 가지고 병원에 가자고 해?”
“외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실 수 없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이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밤에 뛰어가야 하는 것은 엄마가 아니고 나잖아. 식사를 잘 안 하시면 방문해야 하는 것도, 요양보호사가 길게 못 오시면 모셔 오는 것도 이제 다 내가 해야 해. 나는 그렇게 매일매일 마음을 졸이고 살 수 없어.”
아마도 엄마는 가족과 타인 간에 구분 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당신 인생의 의미라고 생각하신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추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없었다기보다는 스스로 능력이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쪽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저를 지탱하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이미 엄마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부담감과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에 삶의 의욕이 없어지고 우울한 마음도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하나 다행인 것은 엄마께서 유치원선생님으로 오래 근무하시고 항상 알뜰히 생활하신 덕에 엄마 명의로 된 자가 아파트와 생활비로 넉넉한 연금이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엄마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아니라는 점은 자식으로서 감사한 일입니다.
- 보호자의 인생을 중심으로 결정
초등학생으로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이륙 전 안내방송을 귀 기울여 듣곤 했습니다. 잘 기억해 놓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비상구를 확인하고, 구명조끼가 제자리에 있는지 만져봤습니다. 갑자기 기내의 기압이 내려가면 산소마스크가 내려올 것이라고 했는데 내가 과연 잘 맞춰 쓰고 끈 조절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린이와 함께 여행하는 경우는…’이라고 방송이 나오기 시작해서 아, 함께 여행하는 어린이에게는 방법이 있구나, 마음을 놓으려고 하는데 멘트가 이어졌습니다.
“아이의 마스크 착용을 도와주기 전에 반드시 본인이 산소마스크를 먼저 착용할 것을 당부드립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다 어린이를 먼저 살피라고들 하던데 굳이 콕 집어서 어린이를 나중에 도와주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린이를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고 어린이의 마스크 착용을 먼저 돕다가 어른이 산소 부족으로 정신을 잃으면 어린이와 어른 모두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린이로서는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을 때 늘 생각나는 기억입니다. 어느 상황에서든 돌보는 사람의 환경과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돌봄을 받는 사람도 공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호자를 중심으로 계획과 일상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꼭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일상이 지속 가능해서 결국 엄마와 저 둘 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간혹 엄마와 저의 요구가 상충하여 타협할 수 없을 때가 있다면 제 기준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보호자의 인생이 돌봄을 받는 분의 인생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서 둘 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생각하여 결정한다고나 할까요.
- 내가 돌봄을 받고 싶은 만큼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낸 자식에게 주홍글씨를 새깁니다. 함께 살면서 돌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따로 사시면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체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고 믿는 친구가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저에게 해준 얘기입니다.
“어떻게 후회가 없겠어. 아쉬움도 있고, 죄송함도 있지. 엄마께서 우리에게 젊은 사람들은 너희들의 인생을 살라고, 아빠는 당신이 책임지겠다고 하셨지만, 우리 아빠잖아. 내가 곁에 있었으면 달랐으려나. 내 자식을 키워야 하는 역할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자주 찾아뵐 수 있었다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진 않았겠지. 엄마께서 매일 찾아뵀으니 아빠가 외로우셨던 건 아니야. 그런데도 자식 된 도리로 내가 결정한 것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어.”
그 인생의 무거움을 알 길이 없는 저는 친구가 말을 잇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뭐가 위안이 됐는지 알아? 내가 아빠였으면 어땠을까. 아빠였다면 내가 어떤 결정을 하길 원했을까? 나라면 나의 자식이 어떻게 살았으면 좋았을까? 이렇게 물어보니 너무 당연한 거야. 나는 당연히 나의 아이들이 그들의 삶을 살기 원하잖아. 아빠도 똑같이 그걸 원하셨을 거고. 그제야 겨우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감정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