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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Oct 27. 2024

초보치매보호자를 위한 Step-by-Step 가이드북

시작하면서

굳이 우리나라 인구의 고령화나 치매 인구의 증가를 말하지 않더라도 40~50대 중년이 된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아이들에서 부모님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환자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설명하는 자료들은 많아도 이제 갓 부모님의 보호자가 된 중년의 자식에게 갑자기 밀려오는 변화와 책임감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를 도와주는 자료는 드문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책에서 무슨 고민을 해야 하나부터 막막한 누군가를 위해 이미 겪어보았고 겪고 있는 저의 일상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94세까지 큰 병 없이 지내시다 기력이 다하여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이후에 엄마가 외할머니와 이모, 이모부의 주 보호자를 담당하시는 것을 옆에서 보아오다가 엄마께서 루이소체 치매 진단을 받으면서 엄마가 하시던 일을 자연스럽게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모께서는 15년 이상 인지 장애가 있으셨는데 가족과 동거 - 요양병원 – 사립요양원 – 국공립요양원 – 대학병원 응급실 – 요양병원을 거쳐 2023년에 돌아가셨고, 이모부는 정신병원 – 사립요양원 – 응급실을 5년간 거치시는 동안 서류나 입원, 간병 등을 도왔습니다. 엄마의 계모이신 외할머니는 아파트에서 거주하시면서 방문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시고 엄마께서 정기적으로 방문하시다가 주보호자의 역할이 어려워지시면서 작년에 사립요양원에 입소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인지 장애가 발생한 어르신들을 충분히 많이 보아왔고, 주위 친구들도 요양시설이나 정부 지원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보나 거주 형태와 요양시설을 결정할 때 많이 물어와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5년 전에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신 엄마의 증상이 악화되어 2023년 초 루이소체 치매 진단을 받고 후반에는 장기요양등급 5등급 (인지등급)을 받게 되신 후에야 누군가의 주보호자가 되어 일상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것이 나의 생활과 정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주간보호센터에 주 4회 다니시면서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엄마와 겨우겨우 일상을 만들어서 살고 있습니다.


해외 거주 경험 때문에 외국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이 저에게 해주는 조언이 한국 친구들이 해주는 조언과 정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님이 나이 드신다고 하면 ‘네가 같이 살아야겠네.’ 내지는 ‘근처로 이사해.’라고 하지만 외국 친구들은 대부분 ‘절대 같이 살면 안 돼.’라고 말합니다. 처음 들을 때는 저의 생활에 충실하라는 외국 친구들의 조언이 지나치게 차갑다고 생각되지만, 그들의 생활을 살펴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꼭 함께해야 할 타이밍을 살펴보라는 말이고, 따로 살면서 시간을 구분하여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가 그렇듯 정답은 없지만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정보도 인용할 수 있겠지만 제가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 어디에서 정리가 잘 된 정보를 찾을 수 있는지 알려드리는 방향으로 하고, 그보다는 보호자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보호자의 마음을 어떻게 단단히 하여 일상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어 글을 쓰려고 합니다. 글을 쓰는 것이 저의 마음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물론 일반화하기 어려운 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이를 통해 비슷한 준비를 하시는 많은 분들과도 마음을 나누고 싶기도 합니다.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요양원에 입소한 어머니를 이십 년 넘게 모신 지인에게 가장 힘들 때가 언제였는지 물었습니다.


“처음 진단을 받을 즈음이었죠.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나이였는데 어머니가 치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었어요. 당장 어디로 모셔야 하는지부터 깜깜했고, 당시에는 정부 지원도 없었거든요.”


예기치 않은 일로 마음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치매 어르신을 모시기 가장 힘든 것도 초기입니다.


“고집이 엄청 센데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고 언어와 행동이 예민하고 과격해지셔요. 아이러니하고 슬픈 얘기이지만 본인의 불안과 고집을 주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주변 사람들도 편해지고 당신 얼굴도 환해지십니다.” 


그러니 이 책은 첫 경험을 시작하는 한 사람을 위한 책입니다. 세상을 처음 대할 때, 사춘기에, 새 직장을 가질 때, 파트너와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할 때처럼, 새로운 무거운 철문 앞에 선 누군가를 위해, 같은 길을 걷지만 각자의 길을 걷는 우리를 위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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