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어린 시절 무엇이 떠오르나요?

day-5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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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적, 메뚜기를 먹었던 식감이 기억이 난다. 갈색으로 잘 볶아진 메뚜기는 바삭바삭했다. 날개가 붙어있는 것도 있었는데, 날개에서는 고소한 맛이 나지 않았다. 맛있다며 잘도 메뚜기를 집어 먹는 나를 보고 아빠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여보 얘 좀 봐'라고 외치던 아빠 목소리가 기억난다. 지금 다시 먹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먹기는커녕 만지지도 못할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지금보다 대범한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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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민지였다. 그 이름을 아직도 기억할 수가 있다. 민지는 반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모든 여자아이들이 민지와 짝을 하고 싶어 했다. 동물원으로 소풍을 가는 날 나는 민지의 짝꿍이 되었다. 민지와 짝꿍이 되어서 무척 기뻤던 일이 생각이 난다. 민지도 나와 짝이 되어 기뻤을지는 잘 모르겠다. 민지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얼굴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동물원에서 민지의 손을 잡고 다녔다. 짝꿍과 손 잡으세요,라고 선생님이 말하면 나와 민지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 퍽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우리 몸집만 한 거북이 등껍질을 쓰다듬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아직도 앨범 속에 있다. 민지는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고, 나는 이를 한 열 개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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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친구를 무척 좋아했던 유치원생은 프로 불편러로 자라났다. 그 무렵이 사춘기였을까. 육 학년 담임선생님은 학기 초부터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학급 걸레로 쓰기 위해 반으로 자른 수건을 제출하라고 했다. 멀쩡한 수건을 반으로 잘라 한쪽을 내면, 나머지 한쪽은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럴 거면 그냥 짝꿍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명이 수건 하나를 내면 되는 게 아닌가? 나는 이런 내용을 일기장에 적었다. 그다음 주에는 내가 싫어하는 친구가 주번이었는데, 체육시간 교실 문을 잠그고 나온 주번에게 선생님이 운동장을 안 뛰어도 된다고 말했다. 지금 운동장 두 바퀴 뛰고 숨이 차 죽겠는데 쟤는 안 뛴다고? 주번이라고 해서 운동장을 안 뛰는 건 불공평하다고 또박또박 일기에 적었다. 그런 일기를 꽤 많이 적었을 때쯤 방과 후에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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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셨어요 선생님?" 나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교실 앞 선생님 자리 보조의자에 앉았다. 선생님은 별 희한한 애를 다 보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기를 쓴 사람과 지금 여기 웃고 있는 학생이 같은 사람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 좋게 웃으면서 다시 나의 논리를 주장했었던 거 같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화 끝에 나도 비겁하게 일기로 선생님을 공격한 점에 대해 사과했다. 선생님도 나에게 일기만 보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중학교에 간 뒤에도 일 년에 한 번은 그 선생님을 찾아가 이런저런 수다를 잔뜩 떨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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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먹는 것에 편견이 없었고, 또래 친구를 좋아했으며, 솔직한 글을 썼다. 그리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사과할 줄 알았다. 지금은 어떨까. 먹는 것은 먹었던 것들의 돌림노래가 되었다. 또래 친구는 여전히 좋아한다. 이제는 친구의 기분도 조금은 헤아릴 줄 알게 되었다. 글은? 글은 어떤 때는 써지고 어떤 때는 안 써진다. 읽는 사람이 신경 쓰여 뭔가 멋있는 척해보려고 하면 여지없이 꼬이는 것 같다. 역시 막 된 글이라도 그냥 마음의 소리 그대로 써야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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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니 초등학생 때와 지금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나이 드신 분들이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했던가. 이제와 삽 십 대 중반인 내가 십 대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만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일이 적어진다는 것만은 알겠다. 새로운 것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도 줄어들고, 심지어 폰에 틱톡도 안 깔려 있다. 자식도 없는데 미래에 애비야 집에 보일러 좀 놔 다오, 이런 말을 하게 될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든다. 그런 시간이 언젠가는 오고야 말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지. 진짜 마음이 십 대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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