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시절, 무엇에 저항했나요?

Day-9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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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학생회를 시작하면서 학교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졌다. 왜 기간제 교사는 수업을 잘해도 짤리는 걸까? 짜장밥엔 군만두가 잘 어울리는데 그걸 반찬으로 제안하려면 어디에 말해야 하는 걸까? 축제 지원금은 30만 원 밖에 되지 않는데 동아리 애들은 어디서 돈이 나서 백만 원이 넘는 예산을 준비하는 걸까? 왜 전교조와 교총 선생님들은 정 반대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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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제를 합리적으로 푸는 것을 좋아했다. 품이 많이 들어도 그게 최선이라면 그냥 했다. 우리 학교는 축제에 목숨을 거는 애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 동아리 홍보를 하고 싶어 했다. 포스터를 붙일 수 있는 게시판은 총 11곳이었다. 거기에 서른 개의 동아리 포스터를 붙이면 맨꼭대기와 맨 아랫줄은 잘 보이지 않았다. 누구나 가운데 자리를 선호했다. 선착순으로 붙이라고 하면 새벽 등교는 애교고, 학교에서 텐트 치고 자는 것도 불사할 애들이었다. 그래서 모든 게시판의 포스터 자리를 제비뽑기로 정했다. 11번을 뽑기 때문에 어떤 곳은 안 좋은 곳에 붙더라도 어떤 곳은 좀 괜찮은 자리에 걸리기도 할 터였다. 30개 동아리 회장이 와서 11번의 제비를 뽑도록 준비하는 일. 모든 게시판의 포스터 지도를 각각 그리고, 위치에 맞게 찾아서 붙이는 일은 학생회의 몫이었다. 포스터뿐만 아니라 축제 팸플릿이며 공연 순서며, 모든 이권이 달린 것들은 제비뽑기를 해야 해서 운영 업무가 넘쳤다. 축제 마지막 날 아침엔 목소리가 안 나왔다. 그래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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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간부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교칙을 정독하는 것이었다. 나는 교칙을 처음부터 끝까지 밑줄 그어 읽었다. 그 일은 학생회를 하면서도 별로 도움이 된 일이 없었는데, 수능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교문에서 선생님에게 잡혔다. 아직 학교에서 목폴라를 입어도 된다고 한 적이 없는데 블라우스가 아닌 목 폴라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교복 착용 규정에 학교가 날짜를 고지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선생님에게 교칙에 그런 내용은 없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저 한쪽에 서있으라고만 했다. 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화가 났다. 선생님에게 교칙 가져와서 이야기하자고, 그런 내용이 한 줄이라도 있는지 보자고 말했다. 학생이 선생님에게 저런 말투를 쓰다니, 나의 분노 알고리즘을 알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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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할 수 없을 때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싫었다. 불리하면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서 얼버무리려 하는 사람들도 싫었다. 그런 게 싫어서 내가 정한 것들은 납득할만한 내용이기를 원했다. 덕분에 학생회에서 친구들과 뭔가를 정할 때는 늘 긴 논의가 있었다. 어떤 것들은 명백히 한 가지가 더 나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나와 전교 회장의 가치관은 서로 달랐고 우리는 자주 싸웠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도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친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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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내가 저항했던 것은, 불합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게 이치든 이론이든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게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도 불합리한 것을 싫어하고, 불합리함을 이야기했을 때 설명 없이 얼버무리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은 참 한결같은 존재로구나. 일기 쓰면서 깨달음을 얻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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