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닮았나요? 무엇을 닮았나요?

day-11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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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사람들은 오빠를 보면 다 엄마를 닮았다고 했다. 나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엄마도 아빠도 딱히 닮지 않은 아이였다. 어쩌다 학교에 엄마가 온 날이면 친구들이 너네 엄마야? 하고 물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맨 앞줄에 앉는 작고 마른 어린이였지만 엄마는 키도 크고 어깨도 넓었다. 지금도 엄마가 나보다 훨씬 큰 옷을 입고, 신발 사이즈도 훨씬 크다. 엄마는 고슴도치처럼 내가 날씬하고 발도 예쁘다고 늘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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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누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는데, 술을 마시게 되자 그런 소릴 듣게 되었다. 처음 필름이 끊겨 돌아온 나에게 아빠는 나에게 두 마디를 했다. 넌 어떻게 나랑 술버릇이 똑같니, 아빠는 남자지만 너는 여자잖아. 그 말 끝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통금이 생겼다. 9시반까지 집에 돌아오라는 명령이었다. 나는 그 시간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 하지만 술은 마셨다. 노력한다면 9시 반에 만취해서 집에 들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술버릇이 아빠랑 똑같다는 이야기는 그 이후 십 년간 엄마에게 더 많이 들었다. 엄마는 딸의 해장국을 끓이면서 늘 잔소리를 했다. 내가 너네 아빠 해장국 끓인 것도 모자라 이제 네 것까지 끓여야겠니, 엄마의 가시 돋친 말과 달리 해장국은 술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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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것도 다 옛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십 년 넘은 나쁜 술버릇을 고쳤다. 이제는 과음하지 않게 되었고, 필름이 끊기는 일도 없어졌다. 술을 통제하면서 마실 수 있게 된 건,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살게 된 덕분이다. 남편 덕분에 나쁜 습관을 고치자 아빠 닮은 좋은 점들이 많이 보인다. 아빠랑 비슷하게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농담도 자주 하는 유쾌한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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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엄마 대신 전화를 받으면, 나를 엄마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모들도 나인지 모르고 말을 시작할 정도니 목소리가 많이 닮았나 보다. 나이가 드니 딸이 엄마랑 똑같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릴 때는 왜 오빠만 엄마를 닮았지, 나도 그런 말 듣고 싶다, 생각했는데. 이제와 엄마랑 똑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내가 평생 엄마를 좋아해 왔기 때문에 점점 닮게 된 것일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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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장을 자주 옮겼던 게 아빠를 닮았다면, 늘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은 엄마를 닮았다. 엄마는 지금도 늘 책을 가까이한다. 항상 읽고 쓰고 공부를 한다. 나에게도 일이랑 별 상관없는 자격증들이 몇 개 있는데, 엄마가 딴 자격증 개수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카페인 때문에 커피를 못 마시는 엄마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을 때는 정말 웃겼다.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엄마에게 절대 돈 벌 수 없다며 겁을 주는데, 그래도 늘 뭔가를 하고 싶다며 그게 엄마의 꿈이라고 말할 때 듣기 좋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엄마처럼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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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굴 닮아 이렇게 진득하지 못한걸까, 살면서 한 가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나는 늘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거나, 하나를 하다가 금방 다른 걸 시작했다. 하지만 중구 남방이더라도 늘 뭔가를 사부작 거리면서 하는 것이 내가 잘하는 것이구나, 하는 걸 요즘 깨닫는다. 글을 쓰는 것도 나의 오랜 습관 중에 하나가 되었고, 코딩 공부도 이제 시작한 지 삼 년이 되어간다. 할 수 있는 수준은 아주 얄팍하지만, 그래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위로해 본다. 인생은 속도보단 방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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