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당신은 어떻게 회복하나요?

day-48

by Luc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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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다. 공개된 곳이나 비공개인 곳에 쓰기도 하고, 신분이 노출되어 있지 않는 블로그에 쓰기도 한다. 어렸을 때도 부모님에게 혼나면 공책에 불평불만을 썼다. 거기에 화난 마음을 화난 글씨체로 잔뜩 써놓고 나면 마음이 풀렸다. 일기장은 언제나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속 깊은 친구였다. 대학시절에도 허세 들린 일기는 미니홈피에 썼지만 속상한 날엔 노트에 일기를 적었다. 내가 나와 나누는 대화에는 가식이 필요 없었다. 타인이 들여다보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솔직하게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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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는 그 힘듦이 나를 짓누를 때가 있다. 계속 그 일이 생각나고 한숨이 나온다. 그렇게 힘든 감정 자체에 빠진다. 그걸 글로 적어두면 질척거리던 늪이 조금 더 단단한 땅으로 변한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지금 나는 어떤 기분인지, 이 감정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기를 바라는지 적힌다. 그렇게 언어로 바뀐 내 감정은 페이지에 저장된다. 그렇게 감정을 덜어내면 새로운 기분으로 이동하기가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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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다. 이야기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이야기 속에는 사람들이 나오고, 그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사십 대 가장이 되기도 하고, 십 대 가출 청소년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되어 잠시 그 삶을 살고 나오면 내 삶의 괴로움도 제삼자의 것처럼 볼 수 있다. 또 언젠가 나도 이런 이야기를 써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마음이 약간 설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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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정말 강력한 힘이 있다. 전공 책은 몇 페이지 넘기는 것도 고역이지만 소설책이라면 두세 시간 앉아서 보는 것쯤 식은 죽 먹기다. 그걸 보면서 나는 울고 웃는다. 아무도 영상으로 그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야기가 재생되기 시작한다. 취준생 시절 어떤 것을 해도 그렇게 즐겁지 않았는데, 소설만큼은 나를 온전히 몰입시킬 수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들 작품을 전부 다 읽고도 모자라 신간을 미리 신청해놓고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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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힘든 일이 별로 없었다. 특히 결혼한 뒤로는 내 감정을 섬세하게 챙겨주는 남편 덕분에 웃는 일이 많았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데, 일기장 대신 들어주는 사람이 생긴 것도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한때 소설로 위안을 얻으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남편처럼 듣는 일로 다른 사람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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